나의 대표시를 말한다
최두석.나희덕 엮음 / 비(도서출판b)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버릇하니 직접 서점에 가서 책을 대면할 시간이 없다. 그렇게 시간을 내지 않는다. 엄청난 책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즐거움도, 책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즐거움도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그래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서점에 갈 일이다. 가서 직접 책을 고를 일이다. 그런데, 서점에 가면 참 엄청나게도 많은 학습관련 책들이 있다. 거의 서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도대체 우리나라 서점은 학생들이 없으면 유지가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서점의 반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나머지 반 중에서 기술관련 서적들을 포기하면, 그 나머지 반 정도만 둘러보게 된다.

 

문학, 철학, 사회과학, 종교, 예술 등등. 그런 이름이 붙어있는 곳을 둘러 본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집어든다. 한 번 죽 훑어본다. 살 만한가, 아니면 미뤄두어야 하나?

 

많은 책들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손에 들고 계산대까지 간 책. 바로 이 책이다. 서점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차례도 보고, 또 수록 내용도 보았으니 고르는데 실패할 일이 없는 책이다.

 

"나의 대표시를 말한다"

 

시인이 직접 자신의 시를 고르고, 그 시에 대해서 이야기한 책이다. 시 창작과정이 나와 있는 부분도 있고, 시에 얽힌 이야기가 있는 부분도 있고, 또 자신의 시론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는, 시인이 자신의 대표시를 이야기하는 기획의 책임에도 시인들답게 정말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

 

기획은 기획일뿐, 난 내 예기를 한다. 시인답다. 총 63명의 시인이 참여했다. 적어도 63편의 시를 읽게 되는 셈이다. 그것도 시인 자신들이 좋아하는 시,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시를...

 

하여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시의 뒤안길을 함께 걷는 느낌도 받아서 더 좋기도 하다. 이미 읽었던 시도 있지만,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어, 이 시에 이런 의미가 있었어, 이 시를 이런 식으로 썼구나 하는 새로움을 더하게 된다.

 

시로 들어가는 문이 63개가 있다고 보면 된다. 아무 문이나 열고 들어가면 된다. 그 문을 열면 더 많은 시의 세계가 펼쳐진다. 읽다가 마음에 드는 시를 만나면 출처가 친절하게도 명시되어 있으니, 시집을 사면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책은 자신이 할 일을 다 한 셈이 된다. 즉, 이 책은 하나로 완결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시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문 역할을 한다. 충실한 문이다. 문이 너무도 많다. 어느 문을 선택하든 시의 세계로 들어가겠지만, 그 세계는 너무도 다름으로 인해 고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선택의 불확실성. 그 즐거움. 이미 정해진 길만을 가는 권태로움에서 벗어나 무엇이 펼쳐질지 모른르는 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설렘. 그것을 만끽할 수 있다.

 

여기에 이 책은 세 개의 선택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우선 이 책의 편자들이 한 선택이다. 그 많은 시인들 중에 편자들은 63인의 시인을 선택했다. 아마도 더 많은 시인들을 선택했겠지만, 요청에 응하지 않은 시인들도 있을터. 또 황동규의 경우와 같이(황동규, 시가 태어나는 자리) 자신의 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이미 한 시인도 있을터. 그래도 우리나라 모든 시인에게 글 한 자락을 요청하지는 않았으리라.

 

때문에 이 책에는 편자들이 선택이 들어 있다. 시를 바라보는 편자들의 시각이 먼저 개입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시인들의 선택이다. 자신에게 대표시를 뽑아달라는 청탁이 왔다. 세상에, 여러 자식들 중에 어느 자식이 가장 예쁘냐는 질문과 같다. 난감하다. 그래도 이 책에서 장철문 시인이 말하듯이 '서로가 응원하며 살아도 벅찬 세상에 안 쓰고 버틸 수도 없다'(256쪽)고 같은 시인들의 처지에서 이런 책을 기획하는 어려움을 알기에 시인들은 어렵지만, 또 그닥 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들의 대표시를 고른다.

 

그리고 꼭 한 마디 한다. 아직 나의 대표시는 쓰여지지 않았다고. 그렇다. 시인이 이것이 나의 대표시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시인은 이미 늙어버린, 시인으로서의 영감을 잃은 그런 상태가 되어버리리라.

 

그럼에도 편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들을 위해서 시를 위해서 그들은 한 편의 시를 선택한다. 그 선택이 이 책에 나와 있다.

 

편자의 선택과 시인의 선택에 중첩에 더하여 이제는 읽는 사람의 선택이 더해진다. 시인이 아무리 이 시 좋다고 해도 읽는 독자는 자신의 관점에서 시를 판단한다. '그건 네 얘기고'가 되는 셈이다. 독자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간다. 그런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63인의 시인 중에 선택을 한다. 시인이 아니라면 시를 선택을 한다. 마음에 드는 시가 있으면 그 시가 수록된 시집에도 기웃거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독자의 선택이다.

 

이런 세 가지의 선택이 모여 이 책을 이룬다. 63개의 문이 언제든지 열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냥 아무 문이나 자신이 고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된다. 시 세계에 발을 담그면 된다. 그러면 이 책은 자신이 할 일을 다하게 된다.

 

이제는 다른 책으로, 다른 시집으로 시의 세계를 여행하면 된다. 자신만의 지도를 갖고, 자신의 발검으로. 

 

이 책에 나와 있는 머리말이 바로 이 책의 효용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인에게 대표시는 늘 미래에 존재하는 한 그루 나무와도 같다. 안개 속에서 그곳을 향해 걸어가게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시 저만치 사라지는 한 그루 나무. 그 최후의 시를 행해 모든 시인은 고단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걷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펴내게 된 것은 시를 읽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책이 드물고 아쉬운 사정 때문이다. 현대시가 갈수록 난해해지고 있는데다 발표되는 시의 분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언제부턴가 독자디 따라 읽기가 어려워져 버렸다. 원론적인 성격의 시론이나 시창작법에 관한 책은 많이 있지만, 그 효용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시인마다 시에 대한 관점과 태도가 다르기에 좋은 시편들의 공통적 특질을 추출해 일반화한다는 것 자체가 무망한 일이 되기 십상이다. (5쪽)

(중략)

  이 책은 일반 독자들뿐 아니라 시를 습작을 하는 이들에게도 좋으 참고가 되리라 믿는다. 시인으로 살아가는 일의 속내와 시상이 떠오르는 순간, 그리고 그 날것의 소재가 한 편의 시로 태언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6쪽)

  

더 말해 무엇하리. 직접 읽으면 된다.

 

덧글

 

이 책을 읽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다른 점이 있었다. 잘못된 글자임에 분명한 시 구절을 보고서, 이 시집이 내게 있다는 생각에 찾아보게 된 시. 이시영의 '고개'

 

3행. '아제야 야제야 정갭이 아제야'라고 되어 있는데, 두 번째 '야제야'는 분명히 '아제야'의 오타이다. 단순한 실수이지만, 시에서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조심할 일이다

 

그리고 14행. '못 살아가겠다고 못 참겠다'고, 15행. '너도 울고 나도 울고 쩌렁쩌렁 울었지만' (42쪽)으로 되어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이시영의 시집 "바람 속으로"에 보면(1995년 초판 5쇄. 132쪽) 14-15행이 한 행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시어도 하나가 다른데..(이 책에서는 '너도 울고 나도 울고'로 되어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시집에는 '너도 울고 도 울고'로 되어 있다.)

 

도대체 시인은 어느 쪽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 시인이 시를 고쳤다고 봐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이것도 편집자의 실수일런지. 알 수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