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제목이 참... 역시 헌책방에서 산 시집인데... 시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시집을 산 이유는 출판사에 대한 믿음 때문인데...

 

이렇듯 어느 한 분야에서 믿음을 주기란 쉽지 않은데... 아직도 자기들이 잘났다고 하는데도 남들은 믿어주지 않는 집단이 있으니. 그들은 그것을 알까?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다면 너무도 뻔뻔한 사람들이고, 모르면서 그렇게 행동한다면 너무도 무식한 사람들일텐데...

 

자신들을 선량(選良)이라고 한다. 뽑힌 인재라는 뜻일텐데... 도대체 그들을 뽑아준 사람들도 문제지만, 매번 최선이 없으니 차악(次惡)을 선택한다고 뽑았으니... 이걸 알고 자신들의 행동을 결정한다면 좀더 좋은 사람들이 될텐데.

 

출판사를 믿고 시집을 고르듯이 정당을 믿고 사람을 뽑는 경우도 꽤 있을텐데... 그 정당이 과연 믿음에 부합할까? 그렇게 믿고 뽑았는데, 영 아닌 사람들도 꽤 있지 않을까? 그러면 정당에 대한 믿음 역시 시나브로 사라져갈텐데...

 

창비란 출판사 마찬가지다. 적어도 문학 분야에서는 믿음이 가는 출판사 아니던가. 예전부터 우리나라 문학을 선도해오던 출판사이니 말이다.

 

시집의 경우도 다양한 시집을 내었고, 그래서 어느 시집을 골라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이 시집도 마찬가지다. 여러모로 궁리를 하면서 읽는데...

 

도대체 뭔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뭔 뜻인지 알 수가 없다는 얘기는 마음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요즘 시집들이 마음으로 읽기보다는 이성으로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집도 마찬가지다.

 

서정홍 시인이 쓰는 시와는 정반대에 서 있다고 보면 된다. 도대체, 이렇게 몽환적일 수가 있는가?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을 주는 시들이다.

 

대표 제목이 된 시인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를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대표시이니 자꾸 읽게 되는데... 읽으면서 '구두를 신고'라는 말은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준비를 했다는 뜻으로 생각을 하는데, '잠이 들었다'란 표현은 준비는 했으되, 나가지는 않는다는, 그래서 결국 자신은 자신의 내부로밖에 침잠할 수 없다는, 그런 히키코모리적인 내용으로밖에는 읽히지 않는다.

 

사회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 속으로만 들어가고 마는, 그것이 '내 몸의 가지들은 몸 속으로만 뻗어갔다'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사람들과의 단절은 '도시의 지붕들이 날아가는 사이가 길들도 사라졌다'고 표현되고 있다. 결국 자신은 '구두 속에서 나오지도 않았다'고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있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상식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을 때, 그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 속으로만 들어간다. 그의 이야기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자신을 향해서만 행해진다. 이런 세계 속에서 논리를 발견하기란 힘들다. 세상은 그 자체로 혼돈인 것이다.

 

이런 혼돈을 이 시집에서 담고 싶었을까?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는 시어들이, 상황들이 시 속에 나타나고 시집에 혼재되어 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이야 하는 듯이. 그렇담 시인이 그려낸 이런 혼란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출판사가 믿음을 주고 있듯이, 정당들이 믿음을 주어야 하듯이, 시인은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는 믿음을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믿음을, 우리는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순간에도 "이야기"로 살아남는 "세헤라자데"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시인은 그래서 "카산드라"가 아니라 "세헤라자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의 이야기는 끊어질듯 끊어질듯 계속해서 이어지고, 그런 이어짐이 우리를 계속 살아있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 시인은 자신을 "세헤라자데"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 험난한 세상,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 시집의 제일 앞에 이 제목의 시가 나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 않을까. 비록 '구두를 신고 잠이 들'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는, 지금은 자신에게로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야기가 횡설수설하고 있지만, 도무지 논리를 찾을 수가 없지만, 나중에는 밖으로 향할 수 있다는, 혼돈의 세상을 질서의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그런 자세. 왜냐, 시인은 언제든 뚜벅뚜벅 걸어나오면 되니까. 구두는 이미 신고 있으니까.

 

세헤라자데

 

  옛날이야기 들려줄까 악몽처럼 가볍고 공기처럼 무겁고 움켜잡으면 모래처럼 빠져나가버리는 이야기 조용한 비명같은 이야기 천년 동안 짠 레이스처럼 거미줄처럼 툭 끊어져 바람에 날아가버릴 것 같은 이야기 지난밤에 본 영화 같고 어제 꿈에서 본 장면 같고 어제 낮에 걸었던 바람 부는 길 같은 흔해빠진 낯선 이야기 당신 피부처럼 맑고 당신 눈동자처럼 검고 당신 입술처럼 붉고 당신처럼 한번도 본 적 없는 이야기 포르말린처럼 매혹적이고 젖처럼 비릿하고 연탄가스처럼 죽여주는 이야기 마지막 키스처럼 짜릿하고 올이 풀린 스웨터처럼 줄줄 새는 이야기 집 나간 개처럼 비를 맞고 쫓겨난 개처럼 빗자루로 맞고 그래도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개 같은 이야기 당신이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 매일 당신이 하는 이야기 내가 죽을 때까지 죽은 당신이 매일 하는 그 이야기 끝이 없는 이야기 흔들리는 구름처럼 불안하고 물고기의 피처럼 뜨겁고 애인의 수염처럼 아름답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이야기 실험은 없고 실험정신도 없고 실험이란 실험은 모두 거부하는 실험적인 이야기 어느날 문득 무언가 떠올린 당신이 노트에 적어내려가는 이야기 어젯밤에 내가 들려준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내일 밤 내가 당신 귀에 속삭일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강성은,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창비. 2010년 초판 3쇄.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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