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
이 이름만으로도 시집을 구입하게 만든다. 김광섭. 얼마나 많이 들었던 이름인가. 그것도 학교 다닐 때 국어 시간에 또는 문학 시간에 배웠던 이름. 친숙하다.
그가 우리나라 초창기 시인으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시 중에서 '성북동 비둘기'만큼 알려진 시도 없는데, 이 시집은 75년에 나왔지만, 그간 발표된 그의 시집들에서 시를 발췌한 것이다.
시를 읽은 이유가 뭘까? 마음이 우울할 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그런데.. 어떤 시가? 그런 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시를 읽는다. 읽어가다 보면 어느 새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시가 있다. 그 시가 나를 치유해 준다.
그런데 이번 시집을 읽다 보니, 시인에게도 시가 치유가 되나 보다. 하긴 글읽기나 글쓰기나 다 치유의 과정일테니.
시인의 아내가 세상을 뜨게 되었을 때의 과정이 '깨끗이와 아내의 죽음'이란 시로 표현되어 있는데, 시뿐만이 아니라 그 시의 끝에 시인은 '노우트'라고 하여 자신의 글을 적어놓고 있다. 참으로 슬픈 의료사고의 현실. 그런 현실에서 시인은 시를 통해서 자신을 치유해 나가고 있다. 아직도 이런 일이 많은데... 이것이 이 시가 우리에게 아직도 유효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아니, 시는 보편적으로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북동 비둘기'와 노래로도 불린 '저녁에'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시는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세상을, 자신을 노래하고 있다.
계절은 겨울이 되고 있는데, 계절만이 아니라 다시 사회도 겨울로 접어들고 있는지, 이 추운 시대에 김광섭의 "겨울날"을 읽으며 겨울을 버티고 싶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 시집을 선뜻 집어든 이유가.
어떤 이는 누구의 발언을 문제 삼아 당신의 나라는 어디인가라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지... 어떤 나라라도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나라. 그 나라... 참...
김광섭의 '나의 사랑하는 나라'라는 시... 그래, 이게 그래도 내 나라다. 나는 나라를 이렇게 생각해야겠지.
나의 사랑하는 나라
- 김광섭
지상에 내가 사는 한 마을이 있으니 / 이는 내가 사랑하는 한 나라이리라
세계에 무수한 나라가 큰 별처럼 빛날지라도 / 내가 살고 내가 사랑하는 나라는 오직 하나뿐
반만년의 역사가 혹은 바다가 되고 혹은 시내가 되어 / 모진 바위에 부딪쳐 지하로 숨어들지라도
이는 나의 가슴에서 피가 되고 맥이 되는 생명일지니 / 나는 어데로 가나 이 끊임없는 생명에서 영광을 찾아
남북으로 양단되고 사상으로 분열된 나라일망정 / 나는 종처럼 이 무거운 나라를 끌고 신성한 곳으로 가리니
오래 닫혀진 침묵의 문이 열리는 날 / 고민을 상징하는 한떨기 꽃은 찬연히 피리라 / 이는 또한 내가 사랑하는 나라 내가 사랑하는 나라의 꿈이어니
김광섭, 겨울날, 창작과비평사, 1990년 7판. 1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