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새에게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67
민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민영 시인의 시는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와 '수유리1'을 알고 있었다. 시인이 현실에서 한 발 비껴서 있지 않고 현실 속에서 삶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삶에는 현실에서 극복해나가야 하는 문제들과 역사를 통해 우리가 꼭 알고 가야할 것들이 있는데 이를 시를 통해서 표현해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집에 지니고 있는 민영 시인의 시집이 겨우 "엉겅퀴꽃" 하나.

 

이번에 헌책방에서 또 한 권을 구입했다. 바로 이 시집 "방울새에게"

 

전체적으로 시들이 짧다. 지나치게 길어지는 요즘 시들의 추세와는 달리 짧게 시상을 정리해서 우선 좋았다. 시란 자고로 짧아야 한다는 생각을 아직도 지니고 있기에.

 

시집의 앞부분에서는 원숙한 노년의 경지가 느껴지는데, 이제는 한참을 달려와 달려온 자리를 돌아보고도 있으며, 그럼에도 얼마 남지 않은 앞길을 바라보고 바로 지금-여기를 생각하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느껴지는 시들이 많다.

 

삶을 생각하는 노년의 경지라고 해야 할까.

 

뒷부분으로 가면 현실에서 시인이 떠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동에서, 러시아에서 벌어진 일들과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들이 시로 살아나고 있다.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일, 다시 반복이 되면 안되는 일들이 시 속에 나타남으로써 우리에게 역사란 과거의 것이 아닌 지금-여기의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역사, 4.19. 시인은 예전에 '수유리'라는 시를 통해서도 이 역사적인 일을 표현하고 있지만, 이 시집에서도 또다시 다루고 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4.19가 진행형이라는 듯이.

 

    落花

-수유리에서

 

하룻밤 휘몰아친

 

미친 바람에

 

활짝 핀 아까운 꽃들

 

다 떨어졌네.

 

민영, 방울새에게, 실천문학사, 2007년. 91쪽.

 

여기에 내 마음을 울리는 시.

 

   流星

-남주 생각

 

저녁 하늘에 반짝이다

 

새벽 하늘에 스러지는

 

별처럼, 덧없이!

 

민영, 방울새에게, 실천문학사, 2007년. 59쪽

 

짧은 시행 속에 너무도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그래서 깊은 울림을 준다. 이것이 바로 시의 장점이리라.

 

그렇다고 이 시집의 시들이 다 짧지는 않다. 무언가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때 시인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예전에 논의가 되었던 '단편서사시' 또는 '이야기시'가 된다.

 

그 대표적인 시가 바로 '병든 서울'이다.

 

병든 서울

 

내가 북에서 남으로 내려왔을 때 / 그는 남에서 북으로 가고 없었다.

양담배와 초콜릿과 추잉껌, / 지프차와 GI와 양갈보가 우글거리는

서울 거리를 헤매고 다니면서 나는 / 그가 남기고 간 [병든 서울]을 읊조렸다.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 내게는 곧이 들리지 않았다."

 

다시 한 곡조-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모리 춤추는 바보와 술 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전쟁이 났을 때 인민군을 따라 / 북에서 내려온 오장환의 오줌 빛깔이

피처럼 붉었다는 소문은 / 그 후 누군가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우리는 그가 왜 이런 몸을 이끌고 / 남쪽으로 내려와야 했는지를 안타까워했다.

1951년 가을 북으로 돌아간 그는 신장병을 앓다가 죽었으며,

영웅적인 시인의 역사는 이것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 그가 없는 서울을 슬퍼하고 있다.

  한 집 건너 술집, / 두 집 건너 러브호텔, / 세 집 건너 바다이야기,  / 네 집 건너 정신과병원.

자본주의 정글 속에 / 독버섯처럼 만발한 병든 서울.

그 병든 서울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 오장환이노래한 인민의 이름으로 세워진

새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살펴보았다.

 

(병든 서울은 오장환의 시 제목. ""의 인용구도 이 시에서 인용)

민영, 방울새에게, 실천문학사, 2007년. 105-107쪽

 

우리의 서울은, 우리의 대한민국은 지금 안녕한가.

오장환이, 그리고 민영이 읊은 병든 서울은 이제 치유를 했는가?

우리나라는 치유가 됐는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