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자들의 이야기 ㅣ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1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 오월의봄 / 2013년 4월
평점 :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자들의 이야기
라고 한다. 그런데 읽으면서 이 말들의 순서가 바뀌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소수자들의 이야기라고.
왜냐고, 사람들은 누구나 같지 않기 때문이고, 누구나 평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범을 바탕으로 비범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범이 평범하지 않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비범하다.
사람이라는 공통점 위에 우리는 서로 다른 자기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개성으로 인해 우리는 나와 너를 구분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런 개성이 없다면 '사람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맑스의 유명한 말이 성립할 수 없었으리라.
이런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소수자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 그리고 이들과 만남을 추구한 일을 '변두리스토리 프로젝트'라고 했단다. 변두리라고 한 이유는 이들의 삶이 중심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삶은 모두 변두리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데, 이 말은 우리들 삶이 모두 변두리라면 이는 우리들 삶이 모두 중심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라이프니츠의 단자를 생각하면 된다. 물론 라이프니츠는 창문이 없는 단자(monad)를 생각했지만, 우리들의 삶은 창문이 있는 단자다.
그래서 이 단자들은 그 자체로 완결된 존재고, 다른 어떤 존재에 비해서 열등하다거나 우월하다거나 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인권의 출발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차별을 이야기하고, 변두리를 이야기하고, 소수자란 이야기를 한다. 왜 그럴까? 이는 눈에 보이는 차별 말고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들이 존재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21세기가 되고, 전세계적으로 인권 인권 하다보니 이상하게 인권을 겉으로는 흉내를 내고 있는데, 이것이 단지 흉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소수자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만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알게 모르게 우리는 많은 차별 속에서 살게 되는데, 이 차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다.
그래서 책 제목이 수신확인이다. 차별이 어떤 건지 이들은 이야기를 한다. 끊임없이 말을 통해서, 행동을 통해서, 표정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통해서 상대방에게 말을 건네는데, 이 말이 상대방에게 수신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수신이 되는 경우는 바로 상대방의 귀가 열려 있을 때다. 귀가 열린다는 얘기는 마음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상대방이 완결된 단자이지만, 이 단자에 다른 단자와 소통할 수 있는 창문이 있다는 얘기다.
소수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내고 있다. 그것을 상대가 받아주길 바라면서. 그럼에도 많은 경우 지나치고 만다.
이 책에 나와 있는 트랜스젠더, 이주민, 장애인, 레즈비언, 비정규직 노동자, 비혼모, 감염인들이 겪은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쩌면 내가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차별의 순간들이 무척 많았겠단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아직 수신이 되지 않았던 거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삶이. 또다시 이런 책을 통해 그들의 삶을 엿본다.
호기심이 아니라 그들의 신호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니기 위해서. 나라는 단자에 창문을 달기 위해서.
나라는 단자에 창문이 달리면 그 때는 이제 좀더 많은 소통들이 이루어지겠지. 단지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사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관계들이 삶을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차별도 단순하게 다가오지 않고 상당히 복합적으로 다가온다는 사실. 때로는 풀지 못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게 다가온다는 사실.
그럼에도 그 매듭은 풀려야 한다는 사실. 매듭이 풀리지 않으면 그들의 삶만이 힘든 것이 아니라 내 삶도 힘들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빼기가 아니라 더하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누구나 평범하다. 이 평범에 남들과 다른 것들을 하나 이상씩 가지고 있는데, 우리들은 그것들을 빼는 것이 아니라 더해야 한다는 사실. 그것들을 더했을 때 우리들의 삶은 다양해지고 풍부해진다는 사실을 이 책은 깨닫게 해주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리 사회는 더하기보다는 빼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사회구조가 아직도 차별 쪽으로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가 얽혀 있다는 마지막 이야기처럼, 서로가 얽혀 있음을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야 할 길을 가지 않아서는 안되지 않은가? 책 표지에 있는 눈물 한 방울, 이런 눈물 한 방울의 의미를 이해하고, 앞으로 이러한 차이들이 우리들의 삶을 더 풍부하게 한다는 더하기 정신을 가질 수 있게, 그래서 다음 책은 수신확인, 그래놓고 환하게 웃는 표지가 되게...
각자, 자기가 있는 장소에서 한 번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길...
나 역시 내가 있는 장소에서 내 삶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단지 생각만이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