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집단의 문학을 위하여: 카프카론 현대의 문학 이론 26
질 들뢰즈 외 지음, 조한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3월
평점 :
절판


카프카란 작가 자체가 우리나라 이상이 받는 대접을 받고 있을 정도로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보다 더 어려운 말을 구사하는 철학자인 들뢰즈와 가타리가 카프카에 대해 쓴 책은 읽기 전부터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도대체 뭔 소리를 할까?

 

사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공동 저작도 많지만, 독자적인 저작도 많은데, 이 책은 둘의 공저다. 어디까지가 들뢰즈의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가타리의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 굳이 알 필요도 없다.

 

이 책에서 이들이 펼친 내용을 따라가기도 벅차니 말이다.

 

이 책을 읽을 땐 조건이 있다. 하나는 카프카의 작품을 적어도 절반 이상은 읽었을 것. 최소한 '변신',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유형지에서', '개에 대한 연구' '시골 의사'와 같은 단편과 장편이라고 할 수 있는 "성, 소송, 실종자"는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다.

 

두 번째 조건은 최소한 들뢰즈, 가타리의 철학 개념은 알 것. 이들의 철학 개념이 카프카의 작품을 읽는데 도처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개념에 카프카의 작품을 대응시키고 있다. 그러니 이들 철학자들의 개념을 알지 못하면 이게 뭔 소린가 하면서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다.

 

즉, 책을 읽어가면서 출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미로 속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빛에서 점점 멀어지는 읽기는 읽는이로 하여금 피로에 나가떨어지게 한다. 김현의 말마따나 '책 읽기의 괴로움'이 된다. 그런데, 이들 철학자의 개념에 조금 익숙하다면 '행복한 책읽기'가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철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철학을 심도 있게 공부한 것도 아니니, 대략 개념에 대한 맥락만 이해하면 된다는 얘기다. 여기에 우리 자신이 읽은 카프카를 더붙인다면 훌륭한 읽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주 오래 전에 산 책인데... 최근 카프카의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이 책도 사놓았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가물가물했는데, 책을 다시 읽다보니, 한 부분만 읽었다. 그 부분에만 표시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읽은 부분이 제3장 '소수집단의 문학이란'이다. 아마도 제목과 관련지어서 이 부분만이라도 이해하자는 생각으로 읽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그건 읽기의 실수다. 어리석은 읽기였다. 물론 제3장부터 읽는 것 좋다. 아니, 어쩌면 제3장부터 읽어야 더 좋을 듯하다. 다 읽는다면 말이다. 우선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읽는 것이 좋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들이 말하는 소수성이란 정통에 대비되는 개념이라는 사실, 통념에 대비되는 존재를 소수집단이라고 보면 되니, 독일인도, 체코인도 되지 못하고, 유대인으로서, 변형된 독일어에 관심을 가진 카프카는 소수집단에 속하는 문학을 한 사람이 된다.

 

이 다음에 그의 작품들에 나타나는 여러 모습들을 이야기하는데, 머리에 와닿은 개념은 탈영토화, 재영토화다.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부분에서 벗어나(탈영토화), 자신의 다른 영토를 구축하는 것(재영토화).

 

결국 카프카의 작품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세상을 다르게 보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탈영토화, 재영토화하는데 탈주가 이루어지고, 이런 탈주는 변신으로 나타난다고 보면 되고, 이러한 탈주들은 각자의 욕망을 지니고 집단을 이루며, 연결되고, 배치되는 특성을 지닌다고 보면 된다는 것.

 

결국 카프카의 문학은 '나무'처럼 중심에서 확고히 연결되어 나아가는 문학이 아니라, '리좀'처럼 각자의 영역이 자신만의 특성을 지니면서 방향없이 나아가는 문학이라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다.

 

'리좀'이 잘 이해 안되면 감자를 생각하면 된다. 감자의 뿌리가 땅으로 들어가 감자들이 열리듯이 카프카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은 이 감자들처럼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는 얘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나 독립적이지 않은 존재들, 서로 연결이 안되어 있을 것 같으나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 존재들, 그래서 결론이 날 수가 없는, 영원히 흩어나가는 그런 존재들이 바로 카프카의 작품이란 얘기다.

 

이런 작품이기에 아직도 우리는 그에게서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이런 얘기를 이 책은 하고 있다.

 

덧말

 

아쉬운 점은, 들뢰즈, 가타리의 철학 용어에 대해서 맨 뒤에 부록으로 해설을 달아주었으면 하는 것과, 번역상에서 작품들의 이름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

가령 이 책에서는 "심판"이라고 하는데, 요즘 읽은 솔 출판사에서는 "소송"이라고 하고, 이 책에서는 "아메리카"로 나와 있는데, 지금은 "실종자"라고 하는 것 등. 작품 명에 대해서도 헷갈린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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