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전집 5
프란츠 카프카 지음, 오용록 옮김 / 솔출판사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성은 존재한다. 그러나 도달할 수 없다. 분명 앞에 보이는데 가는 길을 알 수 없다. 성에서 사람이 오기도 하는데, 역시 갈 수 없다. 특정한 사람만을 제외하고는.

 

이 성은 이성과 합리로 운영되지 않는다. 성이 운영되는 기제는 비합리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이해해서는 안된다. 이성의 힘으로 파악하려고 하면 할수록 성에 가는 길은 꼬이고, 숨는다.

 

그러니 주인공 K는 성에 갈 수가 없다. 그는 성에 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에게 성으로 가는 길은 끝내 열리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성이란 소설, 카프카가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K가 마부를 따라가는 데서 소설이 멈춘다. 도대체, 언제 K는 성에 갈 수 있을지, 하지만 그 앞까지의 전개를 보면 K는 결코 성에 도착할 수가 없다.)

 

그는 성에 갈 수 없을 뿐더러, 성과 관계를 맺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한다. 미끄러짐, 그와 마을 사람들의 관계는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끄러짐이 그를 성에 도달하지 못하게 한다.

 

마을 사람들은 성과의 관계에서 합리성을 버리고 있는데, K는 합리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직업(?)이 측량사로 나온 것만 봐도 그렇다. 측량사란 극도로 합리성을 추구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즉, 측량사는 객관적으로 수치화된 정확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미 합리성을 포기한 마을 사람들과 어울릴 수가 없으며 그의 말이나 행동은 자꾸만 마을사람들과 어긋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성의 고위 관리인 클람을 만날 수 없고, 기껏해야 클람의 비서만을 만나지만, 그것도 의사소통이 되는 만남이 아닌 일방적인 만남에 그치고 만다.

 

배경이 겨울이고, 밤에 소설이 시작된다. 어둡다. 그리고 힘들다. 이는 성에 도달하는 길이 그렇다는 것을 암시해준다고 할 수 있는데...

 

가지 못한다는 사실, 또 성이란 분명 존재하지만 어떤 존재이다라고 할 수 없는 면에서 이 성을 진리라고 한다면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이 K라 할 수 있고, 마을 사람들은 진리가 무엇인지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를 멈추고 그냥 그들의 생활에서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맹목적인 받아들임을 측량사인 K는 이해할 수가 없고, 그래서 이성적인 사람이 겪을 수밖에 없는 방황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설이 전개될수록 이상하게 성의 실체는 사라지고 만다. 오직 마을 사람들만이 실체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마을 사람들을 통해 K의 일이 실패할 거라는 예상을 하게 된다

 

장황한 소설이다. 무슨 미로 찾기 같다. 그런데 출구를 찾지 못하겠다. 찾기도 전에, 마치 찾지 말라는 듯이 소설이 끝나 버린다. 도대체 어떤 결말을 내려고 했을까?

 

수많은 해석들이 모여 카프카를 만들고 있다는 역자 후기에서처럼 읽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성을 나는 진리의 세계로 파악하고자 한다.

 

그리고 K는 화엄경의 선재동자처럼 진리를 알려줄 스승을 찾아 헤매는 구도자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선재동자는 여러 스승들을 만나 점차 진리의 세계에 접근해 가지만, K는 선재동자가 만난 스승들을 만나지 못하고 오히려 진리의 세계를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에 싸여 점점 진리의 세계에서 멀어지고 만다.

 

그래서 그는 진리로 가려고 하지만, 결코 가지 못하고 진리의 주변만을 얼쩡거리고 있을 뿐이다. 지금 내 삶이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 우울했다고나 할까.

 

말로 진리란 무엇이다라고 딱 규정할 수는 없다. 진리는 측량처럼 객관적으로 이것이다라고 말해질 수 없다. 그래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 어쩌면 숨어 있다가 찾는 사람에 의해 발견된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발견을 방해하는 사람들, 이 소설의 마을 사람들처럼, 어디에나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것이 이 소설에서 찾아야 할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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