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카프카 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한석종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완성되지 않은 소설을 읽는 당혹감.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하는 기대감.

또는 자신이 결말을 완성해 가는 창조감.

빈 자리를 채워가는 상상을 하는 즐거움.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평전을 읽다보면 카츠카가 이 작품에 애착을 가지고 시작을 했다가 뜻하지 않게 중단을 하고, 계속 마무리를 하려 했으나 결국 하지 못한, 더이상 그로서는 작품을 진척시키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가 오래 살았다면 완성되었을까? 완성되었다면 어떤 결말이 되었을까?

 

이 작품은 완성이 되지 않았기에 중간 부분에서 끊긴다는 느낌을 받고, 나머지 그가 정리해 두었던 원고를 모아두었던 내용까지 합쳐도 결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한참을 더 진행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냥 나와 있는 내용만으로 무언가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굳이 결론을 찾아내려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종자. 그것은 이 사회에서 그의 존재가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그의 인간적인 죽음은 의미가 없다. 죽음을 떠나서 그의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는 말이다. 즉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뜻이다.

 

실종자라는 제목을 떠올리고 읽으면 그가 어떻게 사회에서 추방되는지에 관심을 두고 읽으면 된다.

 

부모로부터의 추방, 이는 부모와의 관계 맺기에 실패했다는 얘기이고, 여기서 그는 첫번째 그의 부모, 그의 고향으로부터 실종이 된다. 그의 나이 열일곱에. 열일곱이라는 나이는 부모로부터 스스로 독립할 준비를 하고, 부모 역시 그의 독립을 준비시켜줄 나이임에도 그는 하녀를 임신시켰다는 이유로-스스로 살 수 없는 사람이 또다른 책임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니- 미국으로 쫓겨난다. 하여그는 이미 출발부터가 실종자이다.

 

첫째 장에서 "화부"라는 제목을 달고 있고, 다른 매체를 통해 이미 발표되기도 한 글이기도 하지만, 다시 이 책의 첫 장으로 실려 있는 그 장에서 그는 실종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는 앞으로 그가 미국에서 겪게 될 삶의 경로를 미리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내리기 전에 이미 배에서 자신의 짐과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리고 화부를 만나지만 그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 이 장이 바로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면 된다.

 

부모로부터의 추방에 이어 그는 미국에서 만난 후견인 역할을 하는 외삼촌으로부터도 추방이 된다. 관계맺기, 이에 대한 계속된 실패다. 그의 말과 다른 사람들의 판단이 늘 어긋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단초가 된다. 이렇듯 가족간에도 소통이 되지 않는, 그래서 관계맺기에 실패하는 주인공이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계속된 옥시덴탈 호텔에서의 추방과 로빈슨, 들라마르쉬에 의한 브루넬라의 하인 생활. 하지만 과연 여기서 소통이 되고 있을까. 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동등한 인간으로서 관계 맺지 못하고 하인으로 존재하게 된다.

 

더 나아가야 하는데, 원고는 중단되고, 갑자기 브루넬라의 이사가 나온다. 앞에서 그를 괴롭혔던,친구같지도 않은 친구들인 로빈슨과 들라마르쉬는 사라지고.

 

여기서 다시 이야기는 끊기고 오클라하마 얘기가 나온다. 여기서 직원을 채용한다는, 그리고 거기에 고용되어 기차로 여행을 가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다만 이 부분에서 여자 친구 파니 얘기가 잠깐 나오는데, 그렇다면 다시 파니와의 관계가 나와야 하는데, 이는 미완성인가 보다. 자신의 이름을 대지 못하고 '니그로'라고 하는데 이것에서 관계 맺기에 실패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가족과 사회에서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을 다루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리 역시 소통의 부재로 얼마나 고통을 받게 되는가. 얼마나 많은 오해 속에서 살고 있는가.

 

말은 이미 행해진 다음에는 오해를 그 말 속에 품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오해들 속에서도 서로의 진심을 읽어가는,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그런 사회를 우리는 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이 소설 속에서처럼 한 사람의 행동은 계속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그를 인간들 사이에서, 사회에서 추방하게 되고, 결국 그는 살아있되,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실종자'처럼 살아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유대인으로, 또 문학을 하고 싶었으나 생존에 매인 사람으로서,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으나 가지 못한 사람으로서 결국 카프카 자신도 그 자리에 있었으나 자신은 실종자처럼 살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급변하는 사회, 여기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의 정체성도 인정하며, 함께 소통하는 방법, 함께 소통하며 살아가야만 우리는 '실종자'처럼 살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읽기에 쉽다. 완결이 되었다면 더욱 좋았을 그런 소설. 읽기 즐겁다. 세상에 카프카를 읽으며 즐겁다면 안될텐데...

 

이 책 역자 후기에 옛날 우리나라 헌책방에서 발견된 번역본의 표지 뒷면에 "이런 개새끼를 내가 읽다니!", "이것도 문학이냐?"라는 낙서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고 하는데, 반반이다. 그의 문학을 재미있다고, 좋다고 느끼는 사람과 이런 사람은.

 

덧글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그런지 조금 의심이 가는 대목이 있는데...

이 책 첫 장인 "화부"의 첫 구절에서 "열일곱 살의 카알 로스만은..."이라고 되어 있는데, 5장 옥시덴탈 호텔에서에서는 "다음 달에 열여섯 살이 됩니다."하고 카알은 대답했다.(137쪽)고 되어 있다. 실제 원문도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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