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같은 삶의 기록 - 잠언과 미완성 작품집 카프카 전집 2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주동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카프카를 읽느냐고?

그를 전공할 것도 아니고, 논문을 쓸 것도 아닌데, 그냥 알려진 유명한 작품만 읽으면 되지 왜 비싼 돈을 주고 그가 발표도 안한 작품을 읽느냐고? 그것도 완성되지 않은 작품집을...

 

별 이유는 없다. 카프카란 사람이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보다는 그의 삶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삶과 작품의 관계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학문적인 관심이라기보다는 카프카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호기심이 그의 작품에 이르게 했다고나 할까.

 

잠언과 미완성 작품집답게 참 두껍다. 이렇게 두껍게 책을 내면 누가 읽나 싶을 정도로 1000쪽에 달하는 분량은 우선 눈을 질리게 한다. 그리고 한 손에 들고 읽기에는 무게도 제법 나간다. 또 읽어도 읽어도 많이 남아 있는 뒷부분이 질리게도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글이 잘 읽힌다. 잘 읽힌다기보다는 글들이 전체적으로 죽 연결이 되지 않고, 토막나 있기 때문에 중간 중간 쉴 틈이 있기에 그렇게 지루하다는 느낌없이 읽을 수 있다.

 

여기에 잠언은, 그 특성상 짧은 글들의 연속이 아니던가. 하여 그 짧음 속에서 긴 어떤 삶의 진실들을 담고 있기에 더욱 읽기에 편하다.

 

이 작품집에서는 이러한 잠언들이 마음에 와닿는다. 예전에 단행본으로 나온 잠언집과 비교해보지는 않았지만 카프카의 삶과 그리고 우리들의 삶에 대해 생각할 것들이 많다.

 

잠언과 더불어 이 작품집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바로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다. 결국 아버지에게 전달은 되지 않았지만, 카프카를 이해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하는 작품이다. 이것은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카프카는 이 편지를 중심으로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읽으면서 그의 잠언 중에서 이 구절이 생각났다.

 

그는 자유로우면서도 안정된 지상의 시민이다. 그는 모든 지상 공간을 자유로이 활보하기에 충분한 길이의 쇠사슬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상의 경계를 넘어설 수는 없는 길이일 뿐이다. 동시에 그는 자유로우면서도 안정된 천상의 시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지상에서와 유사한 길이의 천상의 쇠사슬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지상으로 가려고 하면 천상의 사슬이 그의 목을 죌 것이고, 천상으로 가려고 하면 지상의 사슬이 목을 조여올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또한 그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 그래서 그는 그 모든 것을 맨 처음 속박당할 때 일어난 한 가지 실책 탓으로 돌리기를 거부하기까지 한다.

 

이 책. 511쪽에서

 

아버지로 대표되는 현실 세계에서만 지내려고 한다면 그는 자유롭게 무엇이든지 하면서 지낼 수가 있다. 반대로 문학으로 대표되는 이상 세계에서 지내려고 해도 그는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 그러나 두 세계를 동시에 아우르려고 하면 그는 쇠사슬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한 세계만을 알고 사는 사람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쇠사슬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쇠사슬이 없다. 그런 쇠사슬은 자신이 속한 세계를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나타난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뛰어넘고자 할 때 이런 쇠사슬을 의식하게 되고, 이 쇠사슬을 벗어나려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그 노력은 너무도 힘든 삶을 수반한다. 이 곳에서도 저 곳에서도 고통받는 경계인의 삶. 그래서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되는 삶. 

 

바로 카프카의 모습 아니던가. 그래서 그는 결혼에서도 그렇게 망설이지 않았던가. 두 세계가 공존할 수 없다는 느낌. 그러한 절망감. 그래서 그는 경계에서 여기 저기서 쇠사슬에 목이 조여지면서 생활하지 않았던가.

 

이 세계와 저 세계를 부단히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을 카프카의 모습이 이 잠언에서, 또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잘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이와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카프카의 작가로서의 자세다. 이 작품집에는 비슷한 글들이 많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비슷하다고 하지만 거의 똑같다. 그가 작품의 완성을 위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그래서 맞춤법, 단어 등에도 커다란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여기서 알 수 있게 된다. 부단한 연습, 고치기, 작품에 대한 결벽증이 이 작품집에서 느낄 수 있는 카프카의 자세다.

 

두껍지만, 한 작가의 생(生)이 이 정도도 안 되면 안 되지 않겠는가. 그의 정말 꿈같은 삶의 기록이 이 책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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