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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디지털리즘 ㅣ 범우 한국 문예 신서 41
남구 지음 / 범우사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디지털은 컴퓨터 시대의 총아다. 그런데, 컴퓨터가 나오기 전에 이미 디지털 시를 시험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재다. 천재. 시대를 앞서간.
이 책은 이상을 그렇게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고 한다. 물론 이상이 컴퓨터를 알았을 리는 없고, 그는 그 당시 유클리드 기하학을 넘어선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공부했고, 또한 상대성이론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당시 사회와 삶을 파악했으리라고 추측을 한다.
그러한 추측 속에서 이상의 시를 해석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나온다. 그것은 이상의 시를 디지털리즘 시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는 오래 전부터 디지털 시에 관심을 가지고, 그를 이론으로 정립하려고 했다고 한다. 디지털에 관한 글들을 꾸준히 발표해 왔고, 그에 걸맞는 시 창작을 해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디지털 시가 무엇인가? 어렵게 생각하면 한 없이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시를 마음으로 느끼기 보다는 아예 무슨 고도의 수학처럼, 해석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게 되고, 시에서 멀어진다.
그냥 디지털 시를 탈관념의 시라고 하자. 우리의 이성이 작동하기 전에 직관이 먼저 작동하고 그를 시로 표현했다고 하면 좀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디지털, 디지털 하지만, 지은이는 시란 결국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를 언어로, 직접 표현하고 있는 시, 그것이 디지털 시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디지털의 0과1이라는 이분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분법, 중간에 매개항이 없는 상태. 지은이는 수학을 끌어들여 온다. 수학을 모르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게... 말이다.
요즘은 미분이니 적분이니, 도함수니 이런 개념들을 시에서 쓰면 머리부터 싸맬텐데... 수학적 사고를 빌려와 디지털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좀 어렵다.
사람의 삶을 미분한 것이 시라고 하고, 이를 적분하면 그 시를 이해한다고 하는데...차분히 읽어보면 그 개념이 잡힐 듯도 한데...아직은 막연하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 시를 동학과 연관시킨다. 동학이라? 참... 수학적 사고란 서양식 사고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미분이니 적분이니 하는 것들은 서양에서 들여온 개념 아니던가? 오히려 시는 동학과 관련을 짓고 있고, 뒷부분에 자작시에서도 동학과 관련된 시들이 많다.
동학? 그렇담 우리가 디지털 시를 이해하는 핵심단어는 바로 동학이다. 동학의 사상이다. 한마디로 동학의 사상을 정리하면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하늘이다다. 그리고 해월의 사상이라는 이천식천(以天食天),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 즉 모든 생명은 다 하늘이라는 뜻.
그렇담, 시에 나타나는 언어적 대상들은 모두 사람에 다름 아니다. 다만 0과 1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매개항 없이 그냥 다른 대상으로 표현될 뿐이다. 이를 다시 우리는 사람으로 해석하면 된다. 즉 사람을 다른 대상으로 미분했다면 우리는 시를 읽으면서 이를 적분하여 사람으로 읽으면 된다는 얘기다. 그렇게 받아들였다.
이런 이론을 가지고 이상의 시를 해석하고 있다. 이상의 그 유명한 오감도. 난해하기로 유명한 오감도를 사람으로 해석한다. 즉,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순서대로 표현한 시라고 해석한다. 이상의 시를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이 추가되었다. 이래서 이상의 시가 계속 해석되고, 분석되겠지만, 어쩌면 0과 1 사이에서 매개항을 없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이상 시에서 그 매개항을 집어넣으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개항을 집어넣는 일이 이상 시의 해석을 풍부하게 다양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는 곧 사람이라고 했지만, 가슴에 잘 다가오지는 않는다. 사실 이상 시는 가슴으로 느낀다기보다는 이성으로 해석하는 맛으로 읽지 않는가? 그렇다면 디지털 시가 사람이라고 해도 우리의 가슴을 배제한 시가 된다면 시로서 어떤 감흥을 일으킬 것인가 고민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