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서정홍 지음, 최수연 사진 / 보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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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시인이라고 한다. 서정홍을. 그가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농부시인이란 말을 꼭 붙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 직업인으로서의 시인은 시를 발표하고, 공식적으로 문단에서 인정받은 사람이라고 한다면,직업인이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시인은 우리 모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시인이냐를 직업으로 따지지 말고, 삶으로 따진다면, 굳이 농부시인이라고 두 직업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시인이란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직업 중에서 시인에 가장 가까운 직업이 농부이리라. 농부는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돈이 안되는 하늘을 바라보며,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농부는 기업농이 아님을 다들 알리라.

 

서정홍 시인은 전에 낸 시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시집 제목은 "내가 가장 착해질 때"이고 시 제목도 '내가 가장 착해질 때'이다.

 

이랑을 만들고 / 흙을 만지며 / 씨를 뿌릴 때 .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전문)

 

이번 시집에도 같은 제목의 시가 있다. 앞의 시가 밭에서 일할 때 자연과 하나가 되어 순수함으로 돌아간 자신을 이야기한다면 이번 시는 그러한 노동의 결과를 내 몸으로 받아들일 때를 이야기하고 있다.

 

내 손으로 / 농사지은 쌀로 / 정성껏 밥을 지어 / 천천히 씹어 먹으면 /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서정홍, 밥 한 숫가락에 기대어, 보리, 2012년.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전문)

 

이렇게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사는 모습이 이 시집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렇다고 농부의 삶이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고 해서 편하다거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시인은 농부이기 때문에 농부의 삶이 얼마나 힘든 삶인지를 시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사실 농부가 되는 길은 하늘이 인도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힘든 길이고, 이렇듯 사람을 살리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가볍게 생각하는 음식들이 이런 험난한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생각을 하면, 버려지는 음식들은 최소한 없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지만, 버리지 못하는 농사일, 그것은 바로 사람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여 서정홍 시인은 삶 자체도 시이다. 그리고 그런 삶이 이번 시집에 시로써 살아서 실려 있다. 이 시집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농부에 대해, 농사에 대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마음이 되살아 난다.

 

어려운 말 하나도 없이, 우리가 쓰는 일상언어들이 그대로 시에 실려 있으며, 시골 생활의 모습들이 가감없이 잘 표현되어 있다. 어쩌면 시로 살려낸 농촌 풍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래서 이번 시집에는 죽음과 관련된 시들이 제법 많다.

 

이제 농촌은 노쇠해가고 있고, 죽음을 늘 곁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마다 노인들이 죽어가고 있는 농촌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경원하지 않는다. 죽음 역시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자연과 하나되는 삶, 아니던가.

 

따라서 자연은 똑똑한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연과 닮은 사람을 우리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허생전"에서 허생도 무인도에 사람들을 데려가지만, 그가 그곳에서 데리고 나온 사람은 바로 똑똑한 사람들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망치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어떤 재벌 총수가 한 말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똑똑한 사람(천재) 한 명이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시인은 알고 있다.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이는 자연과 더불어 생활한 시인의 삶이 말해주는 것이리라. 그런데도 시인은 이를 '못난이 철학'이라고 했다. 못난이가 바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여도 좋으리라.

 

못난이 철학

 

똑똑한 사람이 없으면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들지 못할 것이고

무기가 없으면

비참한 전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 없으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핵발전소도

만들지 못할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 없으면

수천수만 년

잘도 흘러가던 아름다운 강을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파헤치는 짓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 없으면

집을 두세 채 가진 사람도

집이 없어 애태우는 사람도

없어질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 없으면

어질고 착한 사람들이

느리고 미련한 사람들이

서로 나누고 섬기며

모두가 가난하면서도

모두가 부유한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네 것 내 것 따지기 좋아하고

사람 위에 앉아 사람 부리기 즐기고

돈벌이 되는 곳에 똥파리처럼 달려들고

명예와 권력 따위에 눈치 빠르고

땀 흘려 일하지 않고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

똑똑한 사람이 없으면......

 

서정홍, 밥 한 숫가락에 기대어, 보리, 2012년. 못난이 철학 전문 

 

좋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시들을 읽으며 나도 착해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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