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팩토리
안지훈 지음 / 학고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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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헌 책방이 곳곳에 있었다.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던 헌 책들에선 읽은 사람의 모습이 느껴지곤 했다. 옆에다 글을 써 놓은 사람, 좋다고 생각하던 구절에 밑줄을 그어놓던 사람. 그 책을 구입한 날짜와 장소를 기록해 놓은 사람, 다 읽은 다음 느낌을 맨 뒤 백지에 써 놓은 사람, 자신의 이름을 도장으로 만들어 찍어 놓은 사람 등등.

 

좀 낡은 느낌도 나고 이미 남의 손이 갔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헌 책들에서는 나랑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 있었구나, 이 사람은 이 책에서 이런 점을 느꼈구나, 이 사람은 책을 이런 식으로 읽는구나 하면서 다른 사람의 향취를 느낀 적이 있었다.

 

지금은 대다수의 작은 서점들이 문을 닫았고, 동네에서 흔히 찾을 수 있었던 헌 책방도 하나 둘씩 사라지더니 지금은 큰 맘 먹고 헌 책방 나들이를 해야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네 삶의 한 부분이던 물건들이 어느새, 시나브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을 신봉이나 하듯이 옛것들은 버려야 할 것, 필요없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많이 버려지고 말았다.

 

아니, 급변하는 이 정보화시대, 세계화시대에 무슨 옛것이냐고, 자고나면 새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판에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옛것들은 쓸모없음을 지나 현재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라는 인식을 지니게 되었다. 눈만 뜨면 새로움이 펼쳐지는 이 빠름의 세상.

 

하지만 이럴 때 과거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꼭 앞으로만 뛰어야 하냐고, 뒤로 뛸 수도 있다고, 오히려 뒤를 볼 때 더 다채로운 삶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빈티지에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서 미친은 돌았다는 뜻이 아니라, 매니아, 즉 열중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골동품들도 많은데, 이 책을 쓴 사람은 외국에서 생활한 경우가 많기에 우리나라에서 구한 것들보다는 외국에서 구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물건들을 구입할 때 얽힌 사연과 그 물건에 담긴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가고 있다. 그래서 '옛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옛것에서 사람의 냄새를 맡으며, 사람의 생활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러한 옛것들로 인해 지금의 삶이 얼마나 윤택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꼭 빈티지 수집가가 되어야지 하면서 읽을 필요도 없고, 그냥 오래된 물건에 담긴 이야기들을 글쓴이가 안내해준 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좋다. 그러면 자연스레 오래된 것, 낡은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을 나를 만들어준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임을 깨닫게 된다.

 

유한한 지구, 우리는 유한한 지구를 무한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좀더 크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도 한다. 빈티지에 관심이 있는 것이 단지 고상한 취미, 돈이 많이 드는 취미생활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해서, 하루가 멀다하고 새것들이 쏟아지는 이 시대에 정말 내 곁에 있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해준다.

 

꼭 골동품 가게를, 오래된 것들이 많이 나오는 벼룩시장을, 예전 우리나라로 치면 청계천 황학시장(요즘은 풍물시장이던가, 다른 곳으로 이전했는데...)을 찾을 필요는 없다. 우리 주변에도 오래된 것이 널려 있으므로.

 

물품에 대한 이야기지만 삶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된다. 무겁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그 가벼움 속에는 우리의 삶이 녹아 있어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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