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폐족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폐족이라? 출세할 수 없는 집안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하는데... 소위 말하는 친노 사람들 중에 이 말을 썼던 사람이 있다. 이제 우리는 폐족이 되었다고. 그런 폐족들이 다시 정계에 진출했다. 권력에 근접하고 있다. 다산이 말한 폐족과 친노 인사 중에 한 사람이 말한 폐족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정치권력을 잡고, 세상을 바르게 한다는 목표를 지니고 세상에 임하는 사람들에게 정치권력을 잡을 수 없음은 절망 자체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력과는 다르게 사람답게 사는 꿈을 사는 사람에게 폐족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이다.

 

다산은 그래서 폐족이 되었다고 절망하거나 실의에 빠지지 말라고 한다. 더 좋은 기회 아니냐. 성인이 되기를 추구하는. 그래서 폐족이 되었다고 한탄하지 말고, 독서를 하라고 한다. 이 기회, 과거에 얽매인 공부가 아닌, 참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 않느냐고. 왜 공부를 하지 않냐고 자식들을 훈계하고 있다.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같은 폐족이지만, 다른 폐족이 된다.

 

2. 연암 박지원

가끔 궁금하다. 실학파의 거두라 할 수 있는 연암과 다산이 서로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다산은 정조가 총애하는 신하, 연암은 정조가 문체반정이라고 해서 거리를 둔 신하. 하지만 둘의 기본 공통점은 실학이다. 이 실학이 하나의 실학이 아니고, 다양한 학문이었을텐데, 연암의 글에도 다산의 글에도 상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북학파라고 하는 연암은 상업을 중시했다면, 다산은 농업을 중시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서로가 당파가 달라서인가. 연암은 노론 쪽이고, 다산은 남인 쪽인데...

 

연암은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의 가난은 견딜만한 가난이었을 거고, 다산의 가난은 그야말로 견딜 수 없는 가난이었을텐데...

 

그 시대 같지만, 서로 다르게 살아간 사람들. 다산에게서 치열함을 느낄 수 있다면, 연암에게서는 어떤 여유를 느낄 수 있다고 할까.

 

3. 지금 우리 시대 다산은

지금 이 시대 우리는 연암에 가까운가, 다산에 가까운가? 아니 이런 질문이 부질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처지는 다산과 비슷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힘으로 세상과 부딪쳐 살아가야 하는 사람,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한 걸음 비껴나 세상을 관조하는 여유보다는, 세상 속에서 그 세파에 찌들면서도 세파를 이겨나가려는 의지를 지니는 치열성이 더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지금, 다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격동의 시기다. 위기의 시기이기도 하고. 그래서 다산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에 와닿는다. 비록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또는 형인 정약전에게,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글들의 모음이지만, 이 글들 하나하나는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가 마음에 새겨둘 만한 글들이 많다.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글들이다. 두고두고 읽으면서 마음에 새길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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