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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탄생 - 문자라는 기적
노마 히데키 지음, 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 / 돌베개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떠들석하게 나왔던 보도. 훈민정음 해례본 국가에 귀속. 그래서 나는 또다른 훈민정음이 있는 줄 알았다. 있는 줄이다.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있다고는 알려져 있으나 행방이 묘연하다고 하니 말이다.
국보급 문화재를 넘어서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이런 책을 자신의 욕심으로 숨겨두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로 분실을 했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문화재청에서 이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니 지켜볼 일이고.
한글의 탄생이 지식의 역사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 나왔다. 그것도 일본 사람에 의해서. 학문이 국적에 의해서 판가름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나라 국어학자가 아니라 일본에서 공부한 일본 학자라는 점에서 한글에 대한 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 문자인 한글의 모든 것에 대해서 일본에서 먼저 출간이 되고, 일본 사회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이를 다시 우리나라에서 번역하는 모습이 조금은 좀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이 책은 우리가 읽을 만하다. 아니 읽어야 한다. 우리는 한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냥 모어라고 모국어라고 우리는 한글에 대해서 등한시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국어시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많은 국어 문법을 배우지만, 솔직히 학교를 마칠 때까지 훈민정음에 대해서 직접 배운 적이 있던가.
훈민정음 해례본이 존재하고, 인쇄술이 발달한 이 시기에도 우리는 국어시간을 통해서든, 아니면 어떤 교과 시간을 통해서든 직접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부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대학에서 전공하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세종은 누구나 편하게 쓰게 하기 위해 글자를 만들었고, 이 글자는 지금도 가장 과학적인 글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런 글자를 익히는 해설 책이 훈민정음 해례본인데, 그 해례본을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배울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양문법을 받아들여 정리한 문법을 죽어라고 교육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볼 일이다.
유럽에서 언어적으로 변방국가였던 독일이 언어에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은 칸트나 헤겔같은 대철학자가 나와서, 그 나라의 언어로 철학을 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 다음부터 우리는 외교적인 언어는 프랑스어이고, 철학적인 언어는 독일어라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는데...
우리말로 말을 하되, 한자로 기록해야 했던 이중언어 시대를 끝내는 한글이 나오고, 이 한글로 우리의 일상생활이, 그리고 문화생활이 가능해지게 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글자가 세상에 나왔다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체계 전반이 바뀌게 되는 혁명이었다는 주장,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주장이다. 이러한 혁명으로 우리는 지금 정보화시대, 컴퓨터 시대에 더 잘 적응할 수 있게 되었고, 한글의 우수성을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단순한 소리글자를 넘어서, 한글은 소리글자이자 뜻글자이기도 하고, 자음으로 이루어진 언어의 세계를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언어의 세계로 이끌어가게 된 혁명적인 문자라는 이야기. 그러한 한글에 대한 모든 것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또한 일본어와의 비교적인 관점에서, 글꼴이라는 시각디자인적인 관점에서도 다뤄주고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한글에 대해서 전공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책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일본에서 대중적인 독자들을 위해 쓴 한글 책이기에, 한글을 모어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더욱 쉽게 읽힐 수 있다. 그리고 한글이 이렇게 위대했던가 하는 한글의 의의에 대해서 더 자긍심을 지닐 수도 있게 하는 책이다.
가끔, 상상을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를.
그리고 지금 행방을 알 수 없는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을 하루빨리 찾아서 우리들이 볼 수 있기를. 이는 단지 우리나라의 국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문화 유산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너무도 소중한 인류의 자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