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오퍼스 9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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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은유는 한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빗대는 표현법이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남들에게 알려줄 때, 그 대상을 명확히 인식시키는데 은유가 사용된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대상은 모르는 대상이고, 그 대상을 은유로 이야기하는 순간, 아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즉 은유는 알고 있는 대상으로 모르는 대상을 설명하는 방식이 된다.

 

그렇다면 은유를 사용한다는 자체가 이미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은유로서의 질병도 마찬가지다. 질병을 질병으로 보지 않고, 이 질병을 우리가 아는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질병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질병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질병을 사실로 보지 않고, 우리의 관점으로 파악하게 된다. 우리의 관점이란 우리가 지니고 있는 편견, 선입견, 아니면 독단일 수도 있다. 이 관점에서 질병을 보는데, 단지 나만의 관점이 아니라, 우리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하면 이 때 질병은 단지 몸의 이상을 넘어 다른 사회적 폭력의 대상이 된다.

 

질병에 다른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그 질병은 또 다른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질병에 걸린 사람은 사회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은유로서의 질병, 은유로서의 에이즈가 1부와 2부로 묶여 있는 이 책에서 이러한 은유로서의 질병을 다루고 있다. 우리가 질병을 다른 이름으로, 즉 은유로 부르는 순간, 우리는 질병을 질병으로서 인식하지 않게 되고, 어떤 사회적 관점에서 판단하데 된다는 것.

 

이런 질병, 사회로부터 사람들을 밀어내는 은유로서의 질병으로 1부에서는 결핵과 암이 나온다. 다만 결핵은 정신적인 성숙으로, 암은 정신적인 미숙으로 나오는데, 이는 결핵은 한 때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기도 하지만, 암은 개인의 무절제, 방탕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암에 대한 표현들을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군사적인 용어들을 암과 연관지어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은유의 사용이 암환자들을 그냥 환자로 보지 않고, 개인의 생활을 제대로 절제하지 못한 무책임한 사람들로 몰아가며, 사회에서 배제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암은 절개되고, 없애버려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군사적 은유를 없앴으면 좋겠다고 손택은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에이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암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이제는 에이즈가 자리잡고 있는데, 에이즈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결국은 환자들을 단순한 환자로 보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

 

언어에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고 하지만, 이것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경우는 바로 질병에 관해서일 거라는 생각이 손택의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얼마 전 유행했던 신종플루 사태를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은유로서의 질병 관념에 빠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질병을 사실로 보는 눈을 갖는 것이다. 원인을 모를 때 두려움에 휩싸여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대상으로 빗대어 표현하는 순간, 그 원인의 규명보다는 사회적 낙인이 먼저 찍힐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질병은 질병일 뿐이라는 사실. 질병을 하나의 사실로 보고 원인규명을 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낙인을 찍을 일은 없을테고, 쓸데없는 낙인이 찍히는 일도 없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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