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55호를 읽다.

 

특집이 "법원의 권위를 기각합니다"다.

 

법원이 과연 인권을 보호하는 곳으로 존재하는가,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는가 하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사실, 법원이 우리를 보호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법원은 되도록이면 가지 말아야 할 곳, 어떻게든 피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

 

지금 법원과 관련된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법원에 대한 불신도 높아진 상태.

 

그렇다고 법원을 없앨 수도 없는 일이고.

 

통제를 받지 않는, 견제를 받지 않는 권력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으니, 법원 역시 국민에게 통제되어야 함을 인지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대법원 앞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서 있다고 한다. 사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에 정말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있다고 하니, 미국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고 믿는 것만큼 믿을란다.

 

그 정의의 여신상이 서양에서는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고 하는데ㅡ 우리나라에서는 칼이 너무 살벌하다고 생각했는지,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고, 눈을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어째 이상하다. 눈을 가렸다는 얘기는 보기보다는 듣기에 집중하겠단 얘기일텐데, 본다는 행위가 이미 선입견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면, 눈을 질끈 감는 행위는 선입견에 빠지지 않겠다는 얘기가 되는데, 눈 가리개를 벗겨 버렸다. 지엄한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감으면 안되는가 보다.

 

게다가 칼이 아니라, 이 칼은 냉철한 판단을 의미할텐데, 칼 대신 법전이다. 자고로 법전이란 글로 이루어져 있고, 글이란 배운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었으니, 우리나라 법정에서 공판중심주의에 입각하여 말로 재판을 이끌어가고 있는 모습과도 맞지 않는다.

 

글을 모르면 글을 아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 십상인데, 어째서 정의의 여신은 법전을 끼고, 두 눈을 뜨고 있단 말인지. 아는 자들, 이들은 주로 힘센 자들이기 마련이다. 물론 아는 자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층위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자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모습을 이미 정의의 여신상에서 보여주고 있지는 않은지.

 

이번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55호 중에 특집 글들을 읽고, 이 정의의 여신상이 생각이 났다. 이미 정의의 여신상에서 법의 편파성이 드러나지 않았나 하는 그런 잡스러운 생각이 말이다.

 

 

다른 글들도 역시 인권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놓치기 쉬운 문제들을 인권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으니,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데 이 책만큼 좋은 책은 없을 거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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