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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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했다고 하지, 나이 40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얼굴에 드러나게 된다고. 가끔은 그래서 얼굴이 험악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자체도 험악하겠다고 지레 짐작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우리는 그가 그 자신의 모습에서 악을 드러낸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하지만 막상 그 사람 얼굴을 보면 그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일 경우가 많지 많았던가.

 

억압을 일삼는 독재자들도 자신의 집에서는 다정한 사람이듯이, 악은 그렇게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보통 악은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악은 우리에게 다가와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지금은 흔하게 쓰는 이 말이 처음에는 아마도 충격이었나 보다. 그래서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 책이기도 하겠고.

 

여기서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은 악의 평범성을 대표하는, 생각못함과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할 수 없음의 전형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이는 이미 과거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렌트가 이야기하듯이 인류의 역사에서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고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자신은 옳다고, 법과 명령에 의해 성실하게 일할 뿐이라고 하지만, 그 성실이 결국 다른 사람들, 그리고 이 지구에 해를 입히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지금도 많지 않은가.

 

언제고 어디서고 적용될 수 있는 이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우리는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아니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 대신에, 생각못함과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할 수 없음이라는 이 두 말을 사용해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지구에, 인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또는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이성으로 판단했을 대 옳은지, 옳지 않은지 생각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아이히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이 때, 하나하나의 기술들이 단지 어느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지구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한 지역에서의 문제가 지구의 문제가 되는 이 때에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지구적인 관점과 인류적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아이히만은 또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를 다만 법, 규칙과 명령에 충실했을 뿐이라고만 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할 것인가.

 

자신의 일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싶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 자신의 업무(?)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충실하게 임한 사람이 인류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을테니 말이다.

 

아렌트의 글들이 대부분 어려운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쉽다. 아마도 재판의 기록으로서, 보고서 형식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많은 생각할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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