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 폭력에 관한 문제가 날마다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개개인의 싸움의 차원이 아니라 집단적인 폭력이라고, 이거는 미성년자라고 봐줄 수준이 아니라고, 법에 의해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고 한다.
학교와 시와 경찰이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고 한다.
마치 지금까지는 안해왔다는 듯이 호들갑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퇴직경찰이나 퇴직 교사들이 학교 지킴이란 명목으로 학교에 배치된 경우도 있고,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는 지역 경찰이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전문 상담인력까지 학교에 배치하려는 노력도 있어왔고.
그럼에도 왜 이놈의 학교폭력은 근절되지 않을까? 집단 생활을 하면서 근절될 수 없는 문제일까? 그건 아니다.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게 되어 있다. 학교 폭력도 마찬가지다. 다만 어디서부터 풀어갈지 고민을 해야 한다.
학생들을 범죄자 취급을 하고, 학교에 경찰이 상주하면 학교 폭력이 해결될까? 아니다. 이는 다른 여러나라에서 보더라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학교의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결이 될까? 이도 아니다. 그렇다면 사형제가 있는 나라에서 흉악범죄는 이미 다 없어졌어야 한다.
결국 학교 폭력은 처벌의 문제가 아니다. 처벌이 문제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학교의 구조, 교육의 구조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교육의 목표를 민주시민의 양성이라고 해놓고는, 민주시민이 어떻게 해야 양성되는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교육의 목표는 거창하나 도대체 민주시민교육을 하는 경우는 없다. 아니, 오히려 민주적이지 않은 교육을 하고 있지 않은가?
축산업에서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가르는 사업을 옳지 않은 축산방법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교육현장인 지금 학교 공간에 들어서 있는 아이들을 보라. 과연 학교 교실이 인간적인 공간인가? 인간적을 쾌적함을 느끼는 공간을 가지고 있는가? 여기에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있는가? 자신이 배워야 할 과목조차도 선택할 수 없고, 오직 주어진 대로 배워야 하는 아이들, 그리고 교칙이라는 선험적으로 정해진 규율에 자신을 맞춰야 하기에 머리부터 옷까지 어느 하나 자유가 없는 아이들이 과연 "나"란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라도 할 기회가 있었던가?
"나"도 생각 못하는데, "남"을 생각할 수 있을까? "남"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전혀 없는데, "우리"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을까? "나, 남, 우리"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도 없는 아이들에게 학교 폭력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최소한 교육의 구조부터 바꾸어야 하고, 아이들이 "나, 남,우리"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주고, 이들이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나? 이게 선행이 되어야 배려, 남에 대한 존중, 차이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나? 이게 이루어져야 폭력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나?
단순히 처벌 위주로 가면 학교 폭력은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 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때다.
예전부터 학교 폭력에 대해 고민한 교사들이 있었다. 이들이 자신들의 고민을 책으로 펴냈었는데... 많은 경우가 나타나 있고, 교사들의 노력이 들어 있다. 교사들, 지금까지 손놓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그리고 소설 중에서 학교 폭력을 다룬 소설이 있다. 해결방법은 다르지만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 소설들이다.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