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세기 이후 오퍼스 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정한 옮김 / 이후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아렌트 읽기를 다시 시작하다. 어떤 책을 고를까 하다가 가장 얇은 이 책을 선택하다. 먼저 머리에 기름을 칠한 다음 아렌트의 다른 책으로 넘어가는 편이 더 아렌트에 쉽게 접근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폭력의 세기, 제목을 영어대로 번역을 하면 폭력에 대하여 정도가 되겠다. 폭력에 대하여, 20세기후반에 일어났던 여러 폭력을 보면서 아렌트가 폭력과 권력에 대해서 나름대로 성찰한 내용이다.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많은 면에서 생각할거리가 많다.

 

이 책을 읽으며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폭력과 권력을 구분해야 한다. 아렌트가 말하는 폭력은 "도구적이고, 그래서 다른 모든 수단들처럼 항상 그것이 추구하는 목적을 통하여 지침과 정당화를 필요로 하는 상태에 있다"고 한다. 이에 반에 권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고, 필요로 하는 것은 정당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권력은 "그냥 행동하지 않고, 제휴하여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조우한다....집단에 속하는 것이며, 집단이 함께 보유하는 한에서만 존속한다고 한다." 즉, 폭력은 사적 영역에 속할 수 있지만, 권력은 공적 영역에 속한다.

 

이런 논의를 참조하면 폭력의 상황에 사람들이 눈감을 경우, 그 폭력은 권력의 이름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명심해야 한다. 결코 권력이 될 수 없는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 사람들은 이를 권력으로 착각하고 거기에 순응하게 된다. 이러한 무관심, 또는 감성의 부재가 사회에 폭력이 만연하에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폭력을 극복할 수 있는가를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란 소설을 통해서 깨우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힘센 폭력에 굴복하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폭력을 물리치는 과정이 나타난 소설인데, 이 소설을 아렌트의 이 책에 대입하면, 결국 폭력은 개인의 힘으로 나타나지만, 이러한 폭력을 극복하는 상태는 집단의 힘으로, 즉 집단의 행동으로 공적 영역에의 참여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적 영역에 집단이 행동으로 나타내는 힘을 우리는 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권력은 당연히 정당성을 획득하며, 폭력을 굴복시키게 된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더 마음에 새기게 된 말은, "권력이 이미 거리에 있을 때에도, 그 권력을 줍고 책임을 맡을 만한 그와 같은 우발적인 사태에 대비해 왔던 조직 성원들이 필요해진다"는 아렌트의 말이다.

 

우리가 87년 6.10민주화 투쟁으로 권력을 쟁취해야 하는 순간, 이를 준비했던 조직 또는 조직 성원들의 부재로 우리는 권력을 넘겨주고 만 경우가 있었고, 그 후의 여러 촛불 시위에서도 거리에 이미 권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권력을 받아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점에서 이 구절은 통열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폭력에 대한 고찰은, 정당한 권력을 창출하려는 노력을 하게끔 만드는데, 그 노력을 우리들이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 이 또한 명심해야 한다. 다만 권력은 그냥 주어지지 않고, 행동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현존하는 권력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은 물론이고, 다른 여러 요소들을 통해 권력이 아닌, 폭력을 권력으로 위장하려 한다. 이러한 속임수를 간파하고, 이미 그 권력이 붕괴하고 있음을 알게끔 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단순히 폭력이다 비폭력이다를 떠나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잘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덧글

불행하게도 이 책은 품절이 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내용은 다른 책에 다시 실려 있다. 구해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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