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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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좋은점

 

시인하면 플라톤이 떠오른다. 그는 왜 공화국에서 시인을 추방한다고 했을까? 아니 그가 추방하려던 시인은 진리의 세계를 가리던, 왜곡된 세계만을 인식하고 그 세계가 진리인양 말하는 사람들 아니었던가?

 

플라톤이 시인추방으로 악명이 높다고 하지만, 그가 말하는 시인과 우리가 생각하는 시인은 같은 시인이 아닐테니...

 

우리는 시인을 추방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시인을 우리 곁으로 불러들여야 한다. 추방된 시인들, 지금 우리 곁에 없는 시인들은 우리에게 세계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려던, 그래서 현실에서 진실되게 살아가려고 하던,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던 시인들 아니었던가?

 

이 책은 플라톤과는 다르게 진리에 이르는 길은 시로도, 철학으로도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니 어떤 면에서 시는 철학과 함께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지식인들이 문(文),사(史),철(哲)을 따로 떨어뜨려 생각하지 않고, 하나로 생각했듯이, 즉 지식인은 문사철에 능통해야 했듯이, 이 책은 그러한 우리의 전통을 따라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함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철학과 시가 통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플라톤과 달리 공화국에서는 시인도 철학자도 필요함을, 아니 오히려 시인이 넘칠 때 공화국이 더욱 활기차고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곳이 됨을 역설하고 있다.

 

이와 관련지어, 참 많은 철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뇌과학자 등이 나온다. 이들이 주장한 내용들이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됨을 예를 들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역시 진리의 길은 하나뿐이 아님을, 진리에의 길은 다양함을, 그 다양함을 통해 진리가 더 빛남을 보여주고 있다.

 

이름을 많이 들어본 하이데거, 키르케고르, 사르트르, 까뮈, 니체, 아리스토텔레스 등을 비롯하여 나에겐 낯설은 안셀무스, 브래들리, 마르셀, 리쾨르 등까지 정말로 많은 철학자, 심리학자 등이 나온다. 이들에 대해서 그동안 무지했음을 반성하면서, 이들에 대해서 공부해 봐야지 하는 도전 의식과, 지금까지 과연 학교를 다니면서 무엇을 배웠던가? 하는 자괴감까지.

 

중고등학교 때 사회, 도덕, 윤리를 통하여 얻은 지식은 세상에 나를 맞추는 지식이었지, 세상을 해석하고, 세상을 변혁하는 지식은 아니었다는 생각. 하다못해 이들 철학자들을 개괄적으로라도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니...

 

우리 아이들은 적어도 철학자들, 시인들은 알고 지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부록으로(한정판이라는 제한이 붙어있지만) 시집이 있어, 아무 때나 펼쳐보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마치 시식코너를 돌며 맛을 보는 즐거움을 느꼈다고나 할까. 이것저것 각양각색의 음식들을 다 맛볼 수 있었다는 즐거움.

 

 

하지만 아쉬운 점

 

시는 전체를 실어줘야 맛이 있다. 시식코너에서는 일부가 전체의 맛을 대표하기도 하고, 맛의 판별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는 부분으로는 시의 맛을 다 느낄 수 없다. 시는 몇몇 구절의 맛으로 즐겁기도 하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구절 하나하나가 전체와 어울어져 이루는 맛을 능가할 수는 없다. 그래서 부분만 실린 시는 시의 맛을 감소시킨다.

 

이 책은 대체로 시의 전문을 수록했지만, 간혹 부분만 실린 시들이 있다. 그 점이 좀 아쉬웠고, 상당히 많은 시와 철학자들의 저서가 나왔음에도 뒷부분에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색인도 있었으면 좋았을테고, 시인과 시집 이름과 출판사 정도는 정리해줬으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철학자들 이름과 그들의 책, 그리고 출판사가 정리되어 있다면 이 책으로 흥미를  일으킨 독자가 다른 책들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나온 책들이 우리나라에 다 번역이 되어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상태니, 부록에 이를 정리해 주었으면 하는 아쉽다.

 

이와 관련이 있는 책들은

 

조동일의 문학사와 철학사의 관련양상을 보면 오래 전부터 문학과 철학을 관련시켰음을 알 수 있고, 최근에 나온 강신주의 저작들을 읽으면 더 좋을 수 있다.

 

강신주의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

 

그리고 신현수의 시로 만나는 한국현대사도 이 책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덧말

 

384쪽에 시인이 1996년에 발표한 <눈>을 볼까요? 라고 되어 있는데, 김수영의 <눈>은 1966년에 발표되었다고 다른 곳에 나와 있으니, 이는 오자(誤字)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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