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무엇을 할 것인가 - 우리 시대 지성 10인이 전하는 살아 있는 인+문학 강의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엮음 / 동녘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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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무엇을 못하고 있나 

이렇게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문학,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문학이 무엇을 못하고 있단 이야기니, 도대체 지금 이 시대에 문학은 무엇을 못하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작가회의에서 이런 문제점을 지니고 나름대로 강연을 한 내용을 모은 작품집이 이 책이다. 

우리는 문학에서 너무 멀리 나와있지 않는가. 

삶 자체가 파란만장한데, 앉아서 문학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는가? 아니 문학이 우리 삶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무슨 이유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라고 질문을 하기도 한다. 

결국 문학은 우리에게 우리의 지금 삶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데 문제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제시대, 문학은 사람들을 이끄는 선도자였다. 문학인은 백성의 지도자였다.  

지금은? 아니다. 

문학인은 지도자여서는 안된다. 다만 지금 민중들의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면 문학은 자신이 하여야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문학의 종말 

한 때 문학은 죽었다고, 일본의 평론가인 가라타니 고진이 주장을 했고, 이 시대에는 문학자는 없다고 말을 했다. 문학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에, 문학인들이 문학인들의 소명을 잊고, 잃고 있다고 말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진정한 문학인은 몇 명 되지 않는다고, 이들이 살아온 삶이 바로 문학이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시는 죽은 지 오래고, 희곡은 읽히기 위해 쓰이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하고, 수필은 유명한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그것도 참 좋은 말들이 있는 글들을 제외하면 우리 삶에 충격을 주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 별로 없다고 봐야 한다. 

소설, 이도 마찬가지다. 현실이 너무도 급박하게 변해가므로, 도저히 소설의 서사구조가 현실의 사건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현실을 따라가기에도 급급해 현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그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우리 삶에 우리가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총체적으로 문학은 위기에 처해 있다. 아니 종말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담 비평가의 역할은 

문학, 죽었다고, 문학은 이래야 한다고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훈계를 하는 듯한 모습을 경계해야 한다. 문학이 죽으면 비평도 죽는다. 비평할 대상이 없는데, 어찌 비평이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비평가는 문학가와 함께 가야 한다.  

문학가에게 명령하지 않고 함께 이렇게 해보자고 권유해야 한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어렵다. 사실, 비평보다는 창작이 더 힘들다. 남의 글을 재단하기는 쉬우나 자신이 글을 통해 세상을, 삶을 형상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비평가는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작가회의에서 강의한 이 책을 보면 창작을 하는 사람은 몇이 안되고, 비평가들이 많다. 

이들이 하는 말은 옳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모습은 옳은 말들의 나열이 아니다. 다시 살아난, 우리들 곁에 다가온 문학이다.  

그 문학을 통해 우리 삶이 좀더 풍요로와 지는 모습이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김진숙의 글은 그 자체가 문학이다. 가슴을 울리는 문학.  

이 글은 그래서 비평가들의 글과는 다른 울림을 준다.

 

문학은 결국 소수자의 운동이다 

문학은 전체를 지향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의 길을 갈 뿐이다. 다른 이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가야한다고 하지 않는다.  

각자 다른 길들이 모여서 큰길을 이루고, 이 큰길로 독자들이 편하게 다니게 된다. 

자신만의 색깔을 내야 한다. 리얼리즘을 표방하든, 모더니즘을 표방하든, 아니면 포스트 모더니즘을 표방하든, 작가는 자신의 색깔을 내야 한다.  

현실을 바라보는, 삶의 총체성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각자 다른 색깔들을 독자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문학은 철저하게 소수자다. 문학이 다수가 되는 순간, 다양성을 잃는 순간, 문학은 죽는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의 글이 바로 이런 소수자 운동을 다루고 있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운동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운동으로서의 소수자 운동. 

문학는 바로 이러한 소수자 운동이다.

 

문학이 살기 위해서는 

작가는 우선 현실의 삶에서 도피하면 안된다. 작가가 현실과 대결해서 그 대결의 힘듦이 작품 속에 나타나야 한다. 우리의 현실을 조망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문학이 문학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에 개봉된 영화 "도가니"를 보라.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들춰내고 있다. 아니, 들춰내고 있으나 끊임없이 가려지고 있는 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 소설로 먼저 나왔다. 소설로 읽히고 많은 이들에게 생각을 하게 했다. 마찬가지로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사형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렇듯 훌륭한 문학작품은 변주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이런 작품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작품을 통해서 살아나야 한다. 그래야만 문학이 산다. 

여기에 더하여 비평가들은 이런 작품들이 살 수 있는 구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책임을 문학인에게만 씌우지 말고, 도대체 문학을 할 수 없는 여건에 처한 사람들에게 문학을 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장시간 노동, 쉴새없이 돌아가는 교육, 이런 것들에 턱없이 부족한 도서관 등등의 문제를 건드려야 한다.  

그것이 문학인의 자세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와 함께 문학 내부의 고민이 함께 갈 때 문학은 살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점을 말하려 하고 있다. 

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사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특히 문학 작품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문학은 반드시 살아나야 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해답을 찾아나가야 한다. 

 

이 책 속에 있는 사진들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한다.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들. 그것을 각 발표자의 글이 끝날 때마다 한 장씩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 삶이, 아직도 진행 중임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함을, 이 사진들이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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