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용산, 두리반, 한진중공업, 포이동, 그리고 강정 마을... 

쫓겨가는 사람들이라고 제목을 붙여야 하나. 

자신의 고향, 삶터를 잃고, 어디론가 가야 하는 사람들. 

이들은 노마드의 삶을 선택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노마드가 되고 만다. 

호모 노마드. 세상을 발전시키는 주역이어야 할 이들이, 세상에서 내던져지고 버려지게 된다. 

우리는 사실, 노마드보다는 정착민의 삶을 더 좋아하지 않던가. 

그래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던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52호에서 강정마을과 그밖의 다른 여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처음 시작이 강정마을이고, 거의 끝부분이 다시 강정마을이다. 

아니 풀뿌리 민주주의를, 한밭레츠를 다룬 부분도, 협동조합을 다룬 부분도 다 강정마을과 연결이 된다. 

그리고 한진중공업을 다룬 부분도 마찬가지고... 

류은숙의 글 '고향에 대한 권리'에서 국가안보라는 말 대신에 인간 안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무기와 군사기지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존엄성에 대한 관심사에서 지켜진다'(179쪽)고 한다. 

우리가 우리의 삶터를 지키는 행위, 그 자체가 바로 인간 안보이고, 이는 바로 인권을 지키는 행위가 된다는 이야기다. 

인권은 인간의 권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존재의 권리를 존중하고, 인간과 그 존재들이 공생을 해야하는 권리로 해석이 된다. 

가장 이기적인 유전자는 자신을 위해서 다른 유전자와 공생하기를 선택한다고 한다. 가장 이기적인 행위가 결국은 이타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존재들을 위해서도 고향을, 삶터를 지켜야 한다. 

이번 호는 이를 말하고 있다. 

제목처럼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또 떨어지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세상은 아직도 희망이 넘친다고...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고, 이번 호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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