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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치료학의 정립을 위한 시론적 연구 - 문학과 역사에 치유의 길을 묻다 ㅣ 인문치료총서 4
김호연.유강하 지음,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 강원대학교출판부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인문치료학을 정립하기 위한 시론적 성격을 띤 책이다. 한 번에 죽 책을 쓰기 위해 글을 쓰지 않고, 이곳 저곳에 발표했던 글들을 책의 성격에 맞게 다시 편집한 책이다.
인문치료학은 말 그대로 인문학으로 치료를 하는 학문을 뜻한다. 인문치료학, 생소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나라나 서양이나 예전부터 몸이 안 좋을 때는 약물치료와 더불어 함께 시행한 방법이다.
이 중에 대표적인 것이 명상이라고 할 수 있고, 글을 통해서, 책을 통해서, 말을 통해서, 음악을 통해서 치료를 한 경우도 많다. 이들이 다 인문치료에 들어간다.
이 책은 그래서 서론 부분에서 의술의 신이라고 불리는 아스클레피오스부터 시작한다. 이를 추종한 아스클레페이온에서는 약물치료와 인문치료가 병행했다는 사실에서 인문치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1부에서는 역사와 문학의 관계를 세 작품을 통해서 논증하고 있다. 역사가 사실을 천착한다면 문학은 사실에서 발생하는 의미를 추구한다는, 그래서 문학과 역사는 상호보조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데, 측천무후와 이민자의 문제를 다룬 여인무사, 그리고 수용소의 생존을 다룬 이것이 인간인가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읽는 재미도 있고, 그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이다.
2부는 리-텔링이라고, 신화를, 설화를 새롭게 말하기다. 이 새롭게 말하기를 통해서 자신과 사회의 의미를 깨달아가게 된다고 한다. 역시 맹강녀곡장성이라는 이야기를 "눈물"이라는 작품으로 바꿔 쓴 이야기와 여인무사 중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뮬란을 대상으로 논증하고 있다.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읽히고, 인문학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결론에서는 고전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자신이 한 수업내용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여기서는 저널치료의 기법을 도입하는데, 저널치료 중에서 인물 묘사, 보내지 않는 편지, 자유로운 글쓰기를 선보이고, 이것들은 자신에 대한 성찰을 기르고 역지사지의 사고를 확장시켜주며, 긍정적인 자아상을 확립하는데 도움을 준다(199쪽)고 한다.
인문학에 대한 경시부터 시작하여 인문학이 우리 삶에 필수적이라는 주장으로 넘어온 지는 좀 되었다. 희망의 인문학, 행복한 인문학 등 많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책으로 출판되기도 하였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공부함으로써 희망을 찾게 된 과정이 책에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인문학을 하기 위해서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즉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인문학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인문학을 접할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농담식으로 때론 자랑스럽게 말하던 월,화,수,목,금,금,금
이 말이 부끄러운 말로, 해서는 안될 말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 사회가 되었을 때 인문학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 세계 최장 학습 시간, 빨리빨리의 나라, 철야작업이 예사인 나라에서 인문학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뿐이다.
그래서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사회구조를 이야기해야 한다. 적어도 책을 읽고 그 책을 되새김질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이런 점이 이 책에는 나타나 있지 않아 좀 아쉽다.
희망의 인문학, 행복한 인문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을 보라. 재소자, 노숙자 등 이 사회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늘에 있는 사람들도 인문학을 공부하고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생각하기 전에, 그들이 처한 환경을 보아야 한다. 그들은 시간이 있다. 적어도 책을 읽고 생각할 시간이 있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도 인문학 치료의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고전 학습을 하고 있다. 대학생들도 역시 시간이 있다. 혹,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아파서 병원에 오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이들에게도 역시 시간이 있다. 무언가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여유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생계를 위하여 바쁘게 살아가는 일반 노동자들이 얼마나 시간이 있을지...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보라.
그에게 과연 인문학, 아니, 자신의 삶에 대해서 성찰할 시간이 있을까. 그냥 기계처럼 그 자리에서 정신없이, 무의식적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할 뿐이다.
그들에게 인문학을 할 시간을 확보해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인문학치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노력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빨리빨리에서 벗어나 좀 게을러져야겠다.
게으르다는 말이 무엇하면 느림이라고 하자. 느림이 문화가 되면 무언가 생각하게 되고, 이 때부터 삶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고민들이 인문학과 만나면 많은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와질 수 있게 된다.
인문치료를 주장하는 이 책들은 인문학이 어떻게 사람의 정신, 또는 몸까지도 치유할 수 있는가를이야기하고 있다. 좋은 말이고, 필요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유가 있는 사회를 먼저 주장해야 한다.
결국, 역사와 문학이 별개가 아니듯이, 사회와 문학은 별개일 수 없고, 인문치료는 이런 사회와는 동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인문학자와 사회학자, 시민운동가. 정치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야 한다는 당위성이 생기게 된다.
우리 모두 인문학이 우리 삶에 가까이 오는 사회를 꿈꾸고 행동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