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수사학
제이슨 델 간디오 지음, 김상우 옮김 / 동녘 / 2011년 3월
평점 :
말은 생각을 바꾸고, 생각은 습관을 바꾸고, 습관은 운명을 바꾼다고 할 수 있으려나.
이 책을 읽으면 위의 말이 현실로 다가온다는 생각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말이 꼭 우리가 생각하는 말을 의미하지는 않고, 글과 말과 몸을 의미한다고 보면, 결국 말을 바꾸면 생각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면 사람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급진주의자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가 바로 수사학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런 말이 있었지. 머리 속에 아무리 좋은 생각이 들어있어도 표현하지 않으면 똥에 불과하다고.
급진주의자들이 아무리 올바름을 견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생각을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있으나마나한 올바름일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더라도, 급진주의자로 불릴 수 있는 정당이나 노동조합을 보면, 이들의 주장이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외치는 구호가 구호로만 남고, 대중들은, 아니 그들의 말대로 민중들은 그들과 동떨어진 상태에서 그들의 행동을 관망하거나 아니면 냉소적인 태도로 대하거나, 이를 넘어서 오히려 자신들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집단을 지지하기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 대중들이, 민중들이 아직 깨우치치 않아서 그렇다고 책임을 민중에게 전가한다고 해서 해결되겠는가.
이 책의 저자인 간디오는 책임이 급진주의자에게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급진주의자들이 자기들의 주장을 제대로 전달하고, 대중들의 관심을 얻고, 대중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사학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뭐야, 순간 반감이 들기도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결국 자신들의 생각을 어떻게 전달해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변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고 행동을 하다가는 얻을 것이 하나도 없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나라 급진주의자들의 행동이 그렇지 않은가.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그들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았던가. 그들의 주장이 백번 옳더라도, 그 옳음이 그냥 옳다로 끝나고 나하고는 상관없다는 인식만을 주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급진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대중들에게 관철시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 전략이 바로 수사학이라고 간디오는 말하고 있다.
수사학,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내 주장을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가장 좋은 방법을 찾으면 그게 바로 수사학이다. 글로든, 말로든, 몸으로든,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하고, 상대를 설득하여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방법, 수사학, 이 수사학을 마련하느냐 하지 못하느냐가 급진주의자가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아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을 만들어가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잣대가 되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그러한 수사학을 개발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따라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이 책에서 끝내서는 안되리라. 그렇다고 수사학을 현학적으로 배울 필요는 없을테고, 다만 급진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를 공부할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글, 말,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이미 광고에서 다 다루고 있는 내용이지 않은가?
광고주와 광고를 보는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켜 나가는 광고는, 단지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없어져야 하는 대상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이 광고에서 표현의 힘, 표현의 방법 등을 배운다면, 급진주의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고, 행동을 바꾸는데 실패할 확률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말을 당연히 중심이 없는 운동, 다양한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운동을 해나가는 집단이 급진주의자들이니 진보는 분열이 있어야 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분열이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인 어감을 우리가 많이 듣던 한자어로 이 말을 바꾸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가 아니라 '진보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라는 말로 바꾸어야겠다는 생각.
큰 틀은 함께 하되, 작은 부분에서는 자신만의 개성을 지니는 모습을 지니고, 그것을 서로 인정해주는 모습, 급진주의자들이 지녀야 할 자세 아니던가. 즉, 급진주의자들끼리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그리고 함께 하는, 그러나 하나일 수 없는 하나로 되려면 서로에게도 수사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 책은 우선 자신이 급진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부터 읽어야 할 듯하다. 진보정당을 자처하는 사람들, 진보적인 사회단체들, 진보적인 노동, 농민운동 단체들, 기타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먼저 읽고, 서로 대화하고, 그리고 '다르게 가되 함께 가고, 함께 가되 다르게 가는' 모습을 만들어 가면서, 급진주의적이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함께 갈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면 영어 원제목이 급진주의자를 위한 수사학이지만, 번역을 한 책에서 붙인 제목처럼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