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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평점 :
이토록 심각한 일을 이처럼 웃으면서 읽을 수 있게 하다니...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한 갈등 상황인데도 땀이 아니라 웃음이 배어나오게 하고 있다.
배경은 시골 마을이다. 전라도다. 사투리가 가감없이 쓰이고 있으니... 여기에 새로운 젊은이들이 집을 얻어 살게 된다. 성진과 혜진. 마을 사람들은 평균 연령이 이들이 오기 전에 78세라고 하니, 도무지 새로운 사람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기 힘들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그들을 '찌니'로 부르는 것. 큰 찌니, 작은 찌니. 이렇게 마을에 스며들 듯 했던 찌니들이 '레즈비언'으로 밝혀진다.
마을에 한바탕 소동이 인다. 특히 마을에서 목소리가 큰 윤 선생이 이들을 쫓아내야 한다고 한다. 하긴 윤 선생은 기독교인이다. 남편을 장로라고 하니, 뭐, 그에겐 성소수자는 악마다.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다.
찌니들이 레즈비언임을 밝히고 쫓아내야 한다고 하는 윤 선생. 처음엔 레즈를 레지로 알아들은 마을 사람들. 하지만 이들은 곧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순간 얼어붙는다. 이들에게는 너무도 다른 존재다.
여기서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아니, 갈등이랄 것도 없다. 찌니들은 외지인이다. 그 마을에서는 약자다. 그것뿐인가? 레즈비언은 시골 마을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약자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밝히기가 요즘은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건 예전에 비해서지, 당사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마을 사람들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다. 자신들에게는 낯선 성소수자이기 때문이다. 그냥 외지인이 아닌 것. 그렇다고 마냥 배척하지는 않는다. 그들과 살아온 기간이 길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한 마을에서 얼굴을 맞대고 산 사람들 아닌가.
특히 찌니들을 잘 보살펴 주었던 '절골댁'에게는 더더욱 그러했으리라. 하여 절골댁은 발길을 끊는다. 마을 사람들 역시 이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의 작은 제목들이 '누구나'로 시작하듯이 '누구나 비밀은 있고, 조금씩은 나쁘고, 이상한 구석이 있고, 자기 기준으로 살고, 이유가 있으며, 모르고 산다.'
그러므로 누구도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누구나 그러하기에 누구도 배척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으므로. 누구나 자기 삶을 살기에 누구도 남의 삶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것.
부모마저도 그러할진대, 어찌 마을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이 '누구'를 재단하고 평가하고 배제하자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소설은 그 점을 보여준다. 마을에서 쫓아내자는 사람이 있는 한편, 이들을 이해하고 받아주려는 사람도 있다. 바로 이장과 그의 아내 쑤언. 쑤언을 생각해보라.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사람이다. 그 역시 소수자다. 외지인이다.
그런 쑤언은 마을에 완전히 적응한다. 물론 그에게는 시어머니인 양촌댁이 있었다. 무조건 며느리 편을 들어준. 며느리의 마음을 헤아리고 보듬어준. 이렇게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쑤언은 외지인에서 마을 사람으로 완전히 인정을 받게 된다.
그렇다. 한 사람의 지지자만 있어도 버텨낼 수 있다. 그런 역할을 찌니들에겐 쑤언이 해준다. 자신도 겪었기에, 또 겪고 있기에. 마찬가지로 닭을 반려동물로 키우는 찌니들의 친구도 무조건적으로 찌니들을 지지해주고.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찌니들 모르게 먹을거리를 갖다 놓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렇게 찌니들은 차츰차츰 마을 사람들 속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결정적인 계기는 윤 선생네가 겪는 일들 때문이지만, 아마 이 일이 없었어도 그들은 마을에 스며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르기에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점을 이장의 시선으로 풀어가는 장면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살아왔던 과거 속에서 알게 된다. 그들 역시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왔기에...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고, 그들에게 고통을 더해주는 일은 삼가하려 하기에.
세련되게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각자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마을 사람들. 그렇게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갈등을 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을의 삶 아니겠는가.
한번 소설을 펼치면 끝까지 읽게 된다. 그냥 다음, 다음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마을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재미에, 예전 시골 마을이 그렇게 다른 집들의 사정을 자기 집 사정처럼 꿰고 있었던 것처럼, 소설을 읽으며 이 마을 사람들의 사정을 꿰게 된다.
그런 재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의 다양함을 보는 재미.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는 이장의 행동에서도 더 심한 갈등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이들의 갈등이 손에 땀을 쥐게 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더 다름 속에서 또 싸움 속에서도 하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모습에 자연스레 웃음짓게 된다.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