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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세 명의 서술자가 등장한다. 소라. 나나. 나기. 그리고 이들이 합체해서 '나비바' 모두 '나'가 들어간다. 소라의 이름에서 '라'자 역시 앞에 오면 '나'가 되니... 이들의 한자가 다르다는 것은 무시하자.
소라와 나기가 어느 날 이야기하면서 만들어낸, 셋을 상징하던 방울들이 합쳐진 것을 이름하는 것. 나비와 나방 중에 하나를 고르지 않고, 이들을 합친 여러 이름을 나열하다가, 나비바라고 하기로 한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어린 시절 반지하에서 살았던 경험. 그것도 하나의 공간을 둘로 나눈 반지하 방에서 살았던. 소라와 나나를 돌봐주던 나기의 어머니 순자 씨로 인해 이들은 어쩌면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 꼭 혈연으로 뭉친 관계만을 지칭할 필요는 없다. 혈연으로 묶인 집안으로 나나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모세가 등장하지만, 모세의 집안을 보라. 아버지가 어머니 위에 군림하는 그야말로 가부장적인 집안.
그런 집안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모세. 이것이 가족일까? 착취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관계 속으로 나나는 들어갈 생각이 없다. 오히려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순자 아주머니와 나기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이렇게 소설은 태어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가족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난다. 함께 살면서 서로를 위하는 관계. 이것이 가족이 아닐까 하면서, 이들이 지닌 공통점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떴다는 것. 한데 남편을 잃은 아내의 반응이 다르게 펼쳐지는데...
순자는 생활을 잃지 않고 자식을 키우는 반면에 애자(소라, 나나의 엄마)는 자신을 놓아버린다. 생활을 잃어버린다. 생활을 잃어버린 애자를 대신해 소라와 나나에게 사랑을 주는 존재는 순자다.
이렇게 이들은 성장해서도 계속 관계를 이어간다. 때때로 만나서 정기적으로 음식을 만드는 장면에서 이들이 가족처럼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모세와의 결혼을 거부하고, 아이를 홀로 키우겠다고 결심하는 나나, 이런 나나를 지지해주는 소라. 또 그런 자매를 받아들이는 나기와 순자. 이것이 가족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나기라는 인물에 대한 서술에서 그 역시 사회의 주류에 속하지 않는 소수자에 속함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들 모두는 소수자이다.
소설 속에서 나기가 하는 말을 빌리면 이들은 모두 하나뿐인 부족이다. 그런데 하나뿐인 부족임에도 함께한다. 함께하면서 서로를 보듬어주고 지탱해준다.
이것이다. 삶이란 이렇게 하나뿐인 사람들이 모여 함께하는 것. 남들이 보기에 내세울 것 없는 존재들도 자신들의 삶에서는 주인공이라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뿐인 부족이 뜻하는 말일 것이다.
즉 우리 모두는 하나뿐인 부족이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를 모자라는 존재, 결핍된 존재로 보는 시각을 고칠 수 있다.
모두가 소중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이들이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227쪽)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는 소중한 존재들이고, 그들의 삶은 모두 존중받아야 할 삶임을 나나의 말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잔잔하게 소설이 진행되는데, 읽으면서 손에 땀을 쥐는 갈등 장면은 없다. 어쩌면 우리 삶 역시 그런지도 모른다. 그냥 전개되는 소소한 일상. 그런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갈등과 해결.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신들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지켜나가려는 모습들. 그런 점을 이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잔잔하게, 그러나 무언가 마음 속에 남겨진 것이 있는 소설. 그러한 소설이었다. 그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니 나나가 서술자가 되었을 때 많이 나오는 말. 계속해보겠습니다. 이것은 말을 계속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신의 삶을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계속해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역시 소소한 우리의 삶들, 그러한 삶들이 소중하다고, 우리는 모두 하나뿐인 부족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멸종하지 않게 내 삶을 계속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