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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두발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8
카렐 차페크 지음, 정보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10월
평점 :
새로운 번역판이 나왔다. 읽지는 않았지만 2013년에 '지식을만드는지식' 출판사에서 발간했다. 그러다 시일이 지난 다음 소설가 정보라의 번역으로 새로운 판이 나왔다. 예전 판을 읽지 않았으니 이번 판은 읽어야지. 누구 작품인가? 카렐 차페크 작품 아닌가. 누구 번역인가? 정보라 번역 아닌가. 소설가니까 소설의 묘미를 살리는 번역을 했겠지 하는 믿음.
그렇게 차페크의 철학소설 3부작이라고 하는 소설, 이 소설에 첫소설이니 읽기 시작. 처음부터 사건의 결말이 보였다고 생각했다. 이거 뭐야? 불륜 소설이야? 아니 불륜으로 인한 치정 살인?
설마? 이렇게 결말이 뻔히 보이는 소설이라고? 그런데 왜 소설이 1ㅡ2ㅡ3권으로 나누어 있지? 뭔가 반전이 있나? 지금까지 읽었던 차페크 소설들엔 멋진 반전이 있었는데... 게다가 이 소설엔 철학소설 3부작이라는 이름도 있지 않은가.
1권에서 호르두발의 행동에 답답함을 느끼면서 읽어가는데, 아, 이렇게 노동자들의 삶이, 과거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그의 노력이 헛되게 되는 장면, 세상이 변해가는데, 과거를 고수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가 지키려는 삶의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
변해가는 세상, 하지만 지켜야 할 자신의 삶.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 그리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문맹이라 편지를 보내지 못하고 떨어져 있던 삶. 외국에서 돈을 부치다 부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8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호르두발.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중동으로 일하러 간 사람들이 있었다. 호르두발과 같이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자신들의 고향을 등지고, 자신들이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는 다른 삶으로 나아간 사람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사람들. 하지만 우리는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저 보내주는 돈으로 편하게 살았겠거니 한다. 그들이 겪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1권은 호르두발의 시점에서 전개가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8년을 일하다 집으로 돌아온 호르두발에게는 거리를 두는 딸과 자신을 존중하는 것 같지만, 자신에게 전혀 살갑게 대하지 않는 아내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 하인이라고 하는 사람, 그가 하는 일은 자신이 과거에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르다. 자신이 아끼던 밭마저도 팔아버렸다. 삶의 방식이 달라진 집이다.
삶의 방식이 달라졌음에도 호르두발은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내를 믿고 딸도 언젠가는 자신에게 살가워질 것이라고 기대를 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싸늘한 반응. 친구들의 말은 호르두발의 기대와는 다르다. 모든 것이 변했다. 삶의 방식도 아내도.
어떻게 할 것인가? 보통은 아내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거나 그 시대 남자들이 쉽게 생각했던 것처럼 아내를 폭행할 수도 있다. 가부장적인 시대고,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 정부가 바로 집에 있는 하인이라는 사실이니...
호르두발은 자신이 잘하면 아내가 돌아올 것이라고, 자신이 해왔던 삶의 방식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자신이 죽을 것을 대비해 유언장을 쓰는데, 거기에 모든 재산을 아내에게 준다는, 이유를 바로 '부부간의 정절과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적는다.
마을 사람들과 달리 그는 아내를 믿고, 자신의 삶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에게 온 것은 죽음.
2권은 이 죽음을 둘러싼 수사로 진행된다. 용의자가 특정되고 증거들이 하나하나 모이게 된다. 여기서 호르두발은 없다. 그가 지닌 마음, 그가 한 행동은 사라지고, 범죄 현장과 범인이 어떻게 살인을 했는지,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만 남는다.
가정 일이라고 이것은 참 복잡한 문제라고 하는 헌병도 있지만 모든 것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하는 헌병도 있다.
세상 일이 간단명료하게 정리되면 좋겠지만 과연 그런가? 호르두발이 어떤 마음을 지녔는지, 그가 아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명확하게 결론을 내고 싶어하는 헌병에게는 사건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은 없다.
아내가 어떻게 8년을 지냈는지, 호르두발이 돌아왔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8년 동안의 삶과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해서, 그리고 하인인 슈테판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등등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하인인 슈테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사건은 있지만 사람은 없다. 이것이 헌병, 특히 신참 헌병이 지닌 태도다. 이와 좀 다른 관점을 지닌 것이 시골에서 자란 고참 헌병이다. 그는 사건의 복잡성을 안다. 삶의 복잡성도 안다. 하지만 그는 사건을 조사해야 할 헌병이다. 신참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3권으로 가면 재판이다. 재판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 증인들이 나온다. 이 증인들, 자신들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본 사람들. 자신들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한다. 시골 마을에서 불륜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 특히 여성에게는 더더욱. 마을 여성들이 특히 호르두발의 아내 폴라나를 적대한다.
용서할 수 없는 여자. 그들의 증언은 그렇게 흘러가고, 호르두발의 유언장이 증거로 채택이 되지만 변호인이 판단하는 내용과 검사가 판단하는 내용이 전혀 다르다. 같은 유언장임에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마니.
재판에서도 호르두발은 없다. 호르두발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만이 있을 뿐이다. 하여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증거는 명확하기에.
다만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호르두발이 지녔던 마음, 그가 했던 행동은 묻혀버리고 만다.
바로 이것이다. 삶의 복잡성. 사람의 복잡함. 사람을 어느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음을, 도대체 그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중첩이 되는지,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오가는지, 그것을 알 수 없다는.
하여 작가는 1권에서 호르두발의 심리를 펼쳐보이지만, 아내 폴라나나 하인인 슈테판의 마음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호르두발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들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이들이 이야기한다고 해서 과연 진실을 이야기했다고 할 수도 없고.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는 것, 그 마음을 결과만 보고 판단할 수는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 오히려 사건을 자신들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평가하고 단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람을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하는 것.
철학소설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소설의 결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죽은 호르두발.
'유라이 호르두발의 심장은 어딘가에서 사라져버렸고, 끝내 매장되지 못했다.'(228쪽)
이 말은 호르두발의 진실은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가 닿지 않았다는 말. 한 사람의 진실을 과연 우리가 알 수 있을까 라는 의문. 그것이 아닐까. 2부 소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