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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 인문 기행 ㅣ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24년 1월
평점 :
츠바이크가 쓴 여행기를 읽고, 이번엔 서경식이 쓴 여행기다. 이제는 세상을 뜬 그. 그의 형제들이(서승, 서준식) 한국에서 독재정권에 의해 불의하게 탄압을 받을 때, 많은 고통을 겪었던 사람.
불의를 이기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지만, 단순히 정치적인 활동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에게는 예술이 바로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했다.
형제들의 구명을 위해 외국에 가서 미술관에 간다? 누군가는 이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아니다. 왜 그가 미술관에 가면 안 되는가? 이는 어쩌면 '피해자스러움 또는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마음, 행위일지도 모른다.
피해자라면, 또는 불의를 호소하는 사람이라면,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 세상에 사람을 하나의 범주에 가두는 행위 아닐까.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인문 정신에 어긋나는 것 아닐까.
하여 이 책의 제목이 된 '미국 인문 여행'은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는다.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서경식이 미국에 처음 간 1980년대와 트럼프가 정치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2016년, 그리고 다시 2020년이다.
세 시기에 걸친 미국 여행에서 그는 여러 일들을 겹쳐서 회상한다. 하나의 사건이 다양한 시기 속에서 새롭게 자리 매김하기도 하고, 또 처음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그렇게 서경식의 미국 인문 여행이 펼쳐진다.
이런 그에게 '피해자다움' 또는 '호소인다움'이라는 말은 적용이 되지 않는다.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자신을 보고, 또 세계를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다양성, 그러한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도, 과연 미국이 과거에도 마냥 정의로운 나라였을까, '선한 아메리카'였을까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이 주장하는 '인권'도 미국의 국익을 위한 '자원'이라는 점(261쪽)을 그는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한 사람들이 있어, 미국의 희망이 된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이러한 선한 사람들이 미국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게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러니 그는 '선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이러한 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동조자를 얻고 그 선한 힘이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인문 기행을 통해서 바로 그러한 선한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 이유일 터이고. 그것이 미국의 희망이기도 하겠지만, 세계의 희망이기도 할 것이다.
인문 기행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고... 하지만 현재의 미국은 서경식이 이 책을 쓸 때보다 더 안 좋아졌다.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도.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미국은 이제 이란도 폭격하고 있으니... 그럼에도 미국에 선한 사람들의 영향은 미미하다.
언론이 다뤄주고 있지 않아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선한 영향력보다는 국익이라는 또는 자신들의 이익이 더 중시되고 우선시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선한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의 말미에 서경식은 ''이상'을 잃어버리고 무력만이 살아남았다'(258쪽)고 하고 있다. 그만큼 세계는 과거로부터 배운 것이 없이, 오히려 더 강대국의 이익에, 자신들의 욕망 추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 트럼프가 두 번이나 미국 대통령이 되는 그러한 현실 아닌가.
그는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병들고, 괴로워하는 상황. 진실은 거기에 있다'(257쪽)고 하고 있다. '평화롭게 살아온 나는 '허구'의 산물에 지나지 않'(257쪽)을지도 모른다고.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바로 '선한 사람들'이다. 그러한 선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함께하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상에 희망이 될 수 있다.
인문 기행을 읽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절망의 늪에서 한 줄기 희망의 밧줄을 발견하는 것. 그 줄을 잡고 절망의 늪에서 나오려고 하는 것.
인문 기행을 통해 그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예술은 언제나 어떤 악몽의 시대에도 관용, 연대, 공감을 추구하려는 인문 정신이 살아 있음을 가르쳐준다'(157쪽)고 그가 말하고 있으니.
하여 우리 역시 이 절망의 시대에, 선한 아메리카가 아니라 악한 아메리카라고 할 수 있는 지금 미국을 보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한 미국에서도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예술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새롭게 알게 된 작가 특히 '벤 샨', 그리고 이름을 많이 들었던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이번 책. 그가 이 책을 낸 이유를 마음에 담는다.
'나는 지금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세계 여기저기에서 하루하루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의 작은 조각이라도 제시하여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 그 자체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그것이 나의 끝나지 않는 '인문 기행'의 한 페이지다.'(261-2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