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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운명의 집 ㅣ 쏜살 문고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미선 옮김 / 민음사 / 2023년 3월
평점 :
슈테판 츠바이크. 많은 글을 쓴 사람. 그의 소설 몇 편을 읽어보긴 했다. 그가 쓴 평전을 읽은 적도 있고. 여행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여행기. 그가 많은 나라를 여행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 많은 여행 기록 중에서 몇몇을 발췌한 것이 이 책이다.
1902년 벨기에 브루게가 제일 먼저 나온다. 근대 도시지만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그는 브루게를 통해서 도시가 간직하고 역사, 그 역사가 쉽게 지워져서는 안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근대적인 건물들 역시 중세 건물들을 가리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지닌 도시가 바로 브루게라고.
'오래된 집들이 전혀 변형되지 않은 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드문드문 새로 지은 건물들 (그중 하나는 역이다)마저 끝부분이 세 갈래로 갈라진 벽돌 박공을 높이 올린 옛 건축 양식과 아주 정확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저 주민들만 바뀌었다.'(8쪽)라는 표현에서 츠바이크가 브루게에 갔던 당시 건물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브루게 여행을 통해 젊은 시절의 츠바이크는 과거는 현재에 묻혀 잊혀져서는 안 됨을, 과거는 현재 속에 살아 있음을 이미 발견하고 있다.
이 브루게란 도시에 관한 글이 그가 죽은 이후에 나온 글인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1946 과거의 빈'이라는 글과 통한다. 빈이 대단한 이유는 바로 예술에 있다는 것. 그러나 예술은 '자유 없이 번창할 수 없다'(191쪽)는 그의 말.
두 번에 걸친 세계적인 전쟁이 그를 더욱 견디지 못하게 했으리라. 브라질에서 결국 세상을 버리고 말았으니...
빈에 대해 그가 한 말.
'모순의 혼합 그리고 이렇게 끊임없이 조화하려는 시도에서 유럽 문화의 새로운 요소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이 도시가 지닌 본래적 천재성이다'(171쪽)
이 모순의 혼합에는 상대를 배제하거나 억압한다는 생각 자체가 들어있지 않다. 유럽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그 자체로 인정받으며 살 수 있었던 도시가 바로 빈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 꽃필 수가 있었다고.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예술은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그가 꿈꾸던 세상.
'내 생각에 인간은 -마찬가지로 한 민족은 - 지배해서도 헌신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인간은 자유로워야만 하며, 각각의 타인에게 자유를 주어야만 한다.'(184-185쪽)
이런 그에게 전쟁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 그가 영국에 머물 때 전쟁 소식을 듣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영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왜 그럴까라고 의문을 가지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영국인들이 전쟁 소식에도 담담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을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에서 찾고 있다. 바로 영국인들이 정원을 가꾼다는 것. 이 정원이 특별히 아름답다거가 크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신의 집에 자신들이 가꿀 수 있는 만큼의 정원이 있다는 것.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정원에 들러 식물들을 가꾸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사는 모습들이 전쟁을 견디도록 했다는 것.
츠바이크가 쓴 이 글을 읽으면서 리베카 솔닛이 쓴 [오웰의 장미]가 생각났다. 아, 오웰도 영국 사람이었지. 그가 정원에 장미를 가꾸는데 그렇게 열심이었던 것도 이러한 영국인들의 성품이었나 싶은 생각을 했고.
이렇게 츠바이크가 쓴 여행기를 읽으면서 단지 그 도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러한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다른 삶을 본다는 것. 여행기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츠바이크 역시 그런 말을 하는데... 아마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바로 이 구절에 다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집에서 안내서와 함께하는 여행의 매력은 정말 환상적이다. 자신의 공간을 낯선 세계로 바꿀 뿐 아니라 현재의 시간을 과거와 바꿀 수도 있다. 집에서 여행기를 읽는 우리는 갑자기 먼 과거의 낯선 집에서 살 수도 , 빛바랜 옛날 옷을 입을 수도, 우편 마차와 작은 돛배를 타고 여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세기의 사라진 공기를 들이마시며, 활발한 유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할 수도 있다.' (91-92쪽)
이런 여행. 바로 이것이 여행기를 읽는 재미다. 단순한 재미만이 아니라 자신을 집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이 방법에만 안주하면 안 된다. 츠바이크 역시 집 안에서 여행기만을 읽지는 않았다. 여행기를 읽는 것도 좋지만, 직접 여행하는 일 역시 필요하다. 다만, 직접 여행할 때는 편한 여행을 추구하지 말고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여행을 하기를 그는 권장하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여행이라는 단어에는 모험과 위험, 변덕스러운 우연과 유혹적인 불확실성의 은은한 향기가 맴돌았다.'(131쪽)
'진정한 여행을 하려면 차라리 불편함, 성가심, 불쾌함이 낫다. 이것이 제대로 된 여행이다.' (132쪽)
이러한 여행을 한 사람이 집에 있을 때 여행기를 펼친다면, 츠바이크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여행과 다른 사람의 여행이 합쳐지는 또 다른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여행을 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이를 확장하면 그런 민족은 닫힌 민족관을 지닌 민족이 아니라 열린 민족관, 즉 세계시민을 지향하는 민족이 된다.
이런 민족들이 있다면 지구에 전쟁은 없을 텐데. 한 민족이 다른 민족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
그렇게 처음 글에 나오는 조화, 그리고 마지막 글인 자신의 고향 '빈'을 이야기하면서 '삶이란 ... 근심 없이, 또 자유롭고 시기심 없이 친절하게 사는 것'(184쪽)이라는 츠바이크의 말을 마음에 심는다.
그가 살았던 시대처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지금 이 시대, 츠바이크의 이 책은 과거에 머무는 책이 아니라, 또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는 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