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구입할 때 엄정한 기준이 있지는 않다. 그런데도 '유고'라는 말이 붙은 책을 보면 구입해야겠다는 마음이 인다.
왜일까? 작가들이 살아서 독자들의 반응으로 자신이 쓴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살피고, 그것을 다음 창작활동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하는데...
세상을 떠난 작가들은 작품을 내놓아도 독자들의 반응을 알 수 없다. 그는 그냥 작품을 던져 놓은 것이다. 아니, 그가 내놓으려 하지 않은 작품을 누군가가 찾아서 독자들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것이다.
카프카. 생전에 발표한 작품이 적은 작가. 유언으로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워달라고 했다던,
하지만 유언 집행자였던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유언을 지키지 않는다. 그는 카프카의 작품을 편집해서 세상에 내놓는다. 지금, 우리가 카프카의 작품을 읽는 것은 이렇게 해서 가능해졌다.
즉, 카프카는 죽었지만 작품은 살아남았다. 그의 작품에게도 '유고'라는 말이 붙을 수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유고'라는 말이 있는 작품엔 유독 마음이 간다.
이 시집도 그랬다. 김기홍 시인, 분명 [일과 시] 동인시집을 읽은 적이 있으니, 머리 속에 시인의 이름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생소한 시인... 참. 기억력이 이렇게 안 좋아서야.
집에 있는 시집을 찾아보니 [일과 시] 동인 제7집이 있다. 2002년 발간 시집이다. 김기홍 시인이 2019년에 세상을 떴고, 이 유고시집이 2020년에 나왔으니, 한참 전에 발간된 시집이다. 물론 나는 나중에 읽었지만... 여기에도 김기홍 시인의 시가 실려 있다. 아마 다른 동인지에도 실려 있겠지.
카프카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해야 하나. 생전에 시집도 두 권을 냈다. 그런 그가 세상을 뜨고 유고시집이 나왔다.
'여는 시'라고 시집의 앞에 있는 시가 마음을 울린다. 이 시가 이 시집의 `제3부'를 시작하는 시다.
고개에 앉아서
찬바람이 살갗을 파고든다
지난 시절은 주저 없이 가버렸다
그러나 살아야 하리라
저주하듯 온갖 고통들이 나를 에워싸고
외로움에 지쳐갈 때
그 외로움은 거울이 되어 나를 깨우리라
속속들이 어제와 오늘의 나를 비추어 깨우리라
늘 내 안과 밖에 내가 있으리라
김기홍, 뼈의 노래. 푸른사상. 2020년. 91쪽.
그가 살아온 시절. 한국 현대사의 비극들이 일어난 때. 노동자들이 힘겹게 힘겹게 자신들의 권리를 얻어가던 때. 민주주의를 외치며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받던 때.
그 역시 노동자로서, 시인으로서 그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역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자 노력했으리라.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그에게는 따스한 바람이 부는 세상이 아니라 여전히 '찬바람이 살갗을 파고드'는 세상이었을 것이니,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함께하던 시절은 가고, 이제는 고통들이, 그가 겪은 고통들이 '기나긴 잠 - 오랜 잠에서 깨어나다'는 시에 '백일해 뇌막염 뼈 으스러짐 교통사고 결핵....../ 불행의 난전이여 병마의 백화점이여'(130쪽)라는 표현으로 나타나 있으니...
하지만 고통들로 인한 외로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다른 외로움들을 살피는 시인의 모습. 그러한 모습이 '숲에서 보낸 편지' 연작에 잘 나타나 있다. 마찬가지로 '마늘 상처'란 시에 보면 '하루 한 번이라도 내 외로움이 / 그대 외로움을 만났더라면 싹이라도 틔웠을까'(102쪽)라고 외로움이 홀로가 아니라 다른 외로움들과 함께한다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자신을 비추면서 내 안과 밖에서 내가 있으리라고 외치는 시인. 그러한 시인의 표현 속에서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를 생각한다.
세상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또 세상에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내 외로움 속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보고 밖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하는 것.
이 시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홀로가 아니라는 것을, 결코 홀로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외로움은 지금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그러니 그 거울을 통해서 나를 보았다면, 이제 나를 거울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거울 밖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고...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이 시집을 '여는 시'가 맞다. 이 시 구절들을 연상시키는 시들을 쉽게 다른 시들에서 찾을 수 있었으니...
안 좋은 소식이 많은 요즈음, 김기홍 시인의 유고시집에서 위안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