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는 '바벨탑' 이야기가 나온다. 현 교황의 회칙에 언급된 내용이라고 하는데...
가톨릭을 대표하는 교황(이 용어가 황제를 의미한다고 해서 교종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전히 교황이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쓰이니)이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 중에서 바벨탑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를 빗대서 이야기했다고 할 수 있다.
오직 하나를 향해 모두가 나아가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사회인가? 그 사회가 번영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성경에 나와 있다고...
바벨탑은 결국 건설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각자 말이 통하지 않아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을 달리 해석하면 오로지 하나가 되는 세상이 행복한 세상은 아님을, 그런 세상은 지속될 수 없음을, 성경이 바벨탑 이후에도 인류가 계속 존속해 왔음을 부정하지는 않으니...
언어의 다양성은 삶의 다양성이고, 이는 획일화된 삶이 아니라 각자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사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바벨탑은 신의 분노로 무너지지만, 종교를 떠나서 획일성은 결국 유지될 수 없다는 비유로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인공지능, 인공지능 하면서 하나의 목표로 나아갈 때 과연 그 사회가 지속될 수 있을까? 인공지능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아니라 우리지상어떻게 자신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것을 박혜영의 글'우리 삶은 왜 외롭고 불안하게 되었을까(下)'에서 말하고 있는 미로 속에 들어간 인간들 모습과 연결지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크레타 왕 미노스의 명령으로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목적으로 만든 미로. 그 속에 들어가면 누구나 다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갈 수밖에 없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리아드네가 실을 주는 테세우스 전까지는.
미로를 만든 다이달로스조차도 그 속에 들어가면 나오는 길을 못 찾을 정도였다니... 그는 결국 날개를 만들어 날아올라 탈출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들인 이카루스를 잃게 된다. 이는 미로를 탈출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또는 그런 미로를 만든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신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인공지능을 향해 달려가는 현재 우리의 모습은 박혜영의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미로 속에서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가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벨탑이 아니라 다양성을 지닌 삶을, 미로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미로를 빠져나오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하는데...
이런 과제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녹색평론]은. 다만 이런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지금 우리의 삶은 바벨탑을 만드는 인간들과 같은 상태 또는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미궁 속에 들어간 사람들과 같은 상태라고.
문제를 알려줬다. 해결책은 하나가 아니다. 하나만의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그것이 바벨탑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해결책은 상황에 따라, 지역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 다를 수 있다. 다를 수 있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공유하며 함께할 때 아리아드네의 실이 작동할 수 있다.
아리아드네의 실은 밖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문제를 인공지능에 맡기는 것도, 지구 생태의 파괴를 해결할 방법을 우주에서 찾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들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바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일,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를 고민해야 하는 때.
하여 성장지상주의라는 미노타우로스에게서 벗어나야 할 때, 바로 아리아드네의 실은 성장만이 살 길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날 때 보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의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 바로 [녹색평론]이기도 하고.
하여 지금 우리 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3대 매가프로젝트'나 '증권시장', 그리고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통한 교육 개혁' 등등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적 관점을 살필 때,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공개적으로 토론이 될 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올라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벨탑의 교훈을 생각하자. 신의 분노가 아니더라도 오직 하나로만 된 사회는 존속할 수가 없음을... 다양함이, 그러한 다양함 속에서 자신과 다른 존재들이 관계 맺으며 지내는 사회만이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음을, 해답이라 할 수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찾아야 함을 생각하게 한 이번 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