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반시]에 수록되었던 시들을 골라 엮은 시집이다.
1994년 봄호부터 1997년 여름호까지 [시와 반시]의 <지난 계절의 좋은 시>에서 가려 봅은 것(5쪽)이라고 한다.
지금 보면 오래 된 시집이다. 무려 30년 전 시들이니...
시에 유통기한이 없다고 하지만, 어떤 시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잊혀지기도 한다.
세월을 이겨내는 시, 그것이 좋은 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시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요즘처럼 급변하는 세상에.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까딱할 동안 너무도 변해, 그러한 변화를 따라가기 힘든 세상.
빠름, 그냥 빠름이 아니라 거의 빛의 속도와 맞먹을 정도의 빠름이다. 너무도 빠른 변화다.
그러니 과거의 시가 과연 지금도 통할지...
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시들은 시대와 맞물려 있어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30년, 강산이 세 번 변한다는, 예전 시간 개념으로도 그랬는데, 지금 시간 개념으로 하면 천지개벽이 일어난 정도의 변화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시는 계속 창작되고, 또 예전 시를 읽어도 요즘에도 그렇지 할 수 있는 시들이 있다.
어쩌면 시이기 때문에 꼭 그 시대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시는 시대를 넘어서 우리들 마음을 울릴 수 있으니까.
시들을 뽑아 한 권의 시집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시집에서 단순 명쾌한 시 하나. 90년대 들어 시들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는데... 그런 흐름과 다르게 쉽게 다가오는 시.
그러면서 요즘 세태를 돌아보게 하는 시.
송유미의 '냄비의 얼굴은 반짝인다 - 설거지'라는 시다.
냄비의 얼굴은 반짝인다
-설거지
송유미
산더미 같이 쌓여진 그릇을 씻기 위해 개수대 앞에 선다
밥공기들을 하나 하나 <퐁퐁>을 묻혀 닦아내다가
문득 씻지도 않고 쓰는 마음이 손바닥에 만져졌다
먹기 위해 쓰이는 그릇이나 살기 위해 먹는 마음이나
한번 쓰고 나면 씻어두어야
다음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이라 싶었다
그러나 물만 마시고도 씻어두는 유리컵만도 못한 내 마음은
더럽혀지고 때묻어 무엇 하나 담을 수가 없다
금이 가고 얼룩진 영혼의 슬픈 그릇이여,
깨어지고 이가 빠져 쓸 데가 없는 듯한 그릇을 골라내면서
마음도 이와 같이 가려낼 것은 가려내서
담아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누룽지가 붙어서 씻어지지 않는 솥을 씻는다
미움이 마음에 눌어 붙으면
이처럼 닦아내기 어려울까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는 주전자를 보면서
씻으면 씻을수록 반짝이는 찻잔을 보면서
영혼도 이와 같이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게 할 수는 없는 일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릇은 한번만 써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뼈 속까지 씻으려 들면서
세상을 수십 년을 살면서도
마음 한번 비우지 못해
청청히 흐르는 물을 보아도
때묻은 정(情)을 씻을 수가 없구나
남의 티는 그리도 잘 보면서도
게 가슴 하나 헹구지 못하면서
오늘도 아침 저녁을 종종걸음치며
죄 없는 냄비의 얼굴만
닦고 닦는 것이다.
강경주 외,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시와반시. 1997년. 99-100쪽.
이 시를 읽으면서 최근에 읽은 [사고외주]라는 책이 생각났다. 자신의 생각조차도 이제는 인공지능에 맡기는 세상.
설거지, 손으로 하기보다는 식기세척기에 맡겨버리는 세상. 그렇게 자신이 하지 않고 맡겨버림으로써 생각하는 일, 닦는 일을 하지 않게 된 세상.
편리함에 몸을 맡기고 조금 불편한 것도 참지 못하게 된 세상이 아닌가 싶은데... 이런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자신의 마음을 닦는 일.
마음 닦는 일은 쉽게 되지도 않는다. 참 어려운 일이다. 힘들다. 불편하다. 그리고 마음을 닦는다고 해서 무언가가 자신에게 돌아오지도 않는다.
어쩌면 마음을 닦는 일은 현재의 이익을 포기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고 현재를 즐기라는 현대인의 삶에서, 현재의 삶이 아니라 미래의 삶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라고 하면... 누가?
마음 닦기도 인공지능이나 식기세척기 또는 로봇청소기처럼 다른 존재가 해주면 좋겠지만, 누가 뭐래도 마음 닦기는 자신이 할 수밖에 없다.
마음 닦아야 한다는 동기는 외부에서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 닦기는 스스로, 자신이 직접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피곤하다. 힘들다. 힘드니 포기한다.
마음 닦기보다 원인을 외부에 돌리는 것이 얼마나 편한가. 나는 잘하고 있는데, 남들이 못해서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이라고...
내 눈의 들보는 보이지 않고 남 눈에 있는 티끌만 보이는 상태. 한자성어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말이 있다.
나를 닦고 남을 다스린다. 이 말 붙어 있지만 순서가 있단 생각이 든다. 나를 닦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그 다음에 남을 다스릴 수 있다고.
즉 내 마음 닦기가 된 이후에야 남에게 무어라 할 수 있다는 것인데... 현재,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과연 그런가?
내 마음 닦기는 하지 않고, 내 마음에 때가 묻은 것은 내 탓이 아니고 남 탓이니, 그런 남을 다스리기만 하면 내 마음도 닦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느껴지는 행태들이 너무도 많은 요즘인데...
남을 다스린다는 말에는 자기 마음을 닦았다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을 명심해야 한다. 남탓을 하기 전에, 남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모든 것을 외부에 돌리고 맡기는 세상에서도 맡겨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 마음을 닦는 일이다.
그렇게 마음을 닦는 일이 무척 힘들어진 것이 요즘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시인데... 90년대에도 이런 경향이 있었다면 지금은 더더 심해지지 않았나 싶으니...
이 시, 자신의 마음 닦기에는 소홀하면서 남에게 때를 씻으라고 큰소리치는 사람, 그런 사람들, 읽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이 시를 읽으면서 과연 나는 마음 닦기를 하고 있었나 반성을 하게 됐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