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에 이런 말이 있다. 김선우라는 시인에 대해, 그의 시에 대해 종합적으로 이야기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시에는 늘 다채로운 감각과 사유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빛을 낸다. 생명에 대한 예민한 관찰, 시민성에 대한 적극적 발언, 기후위기와 생태적 환경의 파괴에 대한 직설적 반성, 자본을 향한 씩씩한 비판, 차별 없는 사랑과 연대에 관한 섬세한 이미지 등등.' (122쪽)
딱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김선우의 작품은 그랬다. 시만이 아니라 소설도. 그렇지만 이렇게 총평으로 이 시집을 평가할 수는 없다. 이것은 김선우 시 전반에 관한 이야기지, 이 시집에 관한 정리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이 총평이 이 시집에도 적용이 되지만, 그럼에도 이번 시집에는 그 전의 시집에서 주던 느낌과 다른 무엇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어쩌면 이 시집의 시들은 의미가 더 쉽게 전달되도록 쓰여졌는지도 모른다.
시인이 자신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 시로 서로 얽히는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어쩌면 시인이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시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 시집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시인과의 대화'란 시가 있다. 이 시에 나오는 몇 구절.
'본래 쓸쓸한 세상인걸요. 사람에게는 사이가 있으니. ... 시가 없으면 반드시 시가 태어나죠. 인간(人間) - 사람 사이는 채워야 하기에. ... 시인이 없는 세상은 없어요.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 사람에게서 사이를 보았다면 당신은 시인이에요. ... - 사이가 더 커지지 않는 세상. / 우리 모두 시인인 세상을 엿보며 / 시인은 이렇게 무사태평이다.'('시인과의 대화' 중에서. 30-31쪽)
그렇다. 시인이라는 특별한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되어야 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 시집이다. 하여 시인은 자신의 조카가 짖는 모습을 보고도 '네가 짖는 대신 개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치면 되잖아, 이런 따위 말만큼은 하지 않는 걸로 시인 이모의 소임을 다하는 시간.'('쉬잇! 조심조심 동심 앞에서는' 중에서. 36쪽)이라고 표현한다.
인간 중심에서 벗어난 것이다. 다른 모든 존재를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대하는 모습. 그런 모습은 '야생 사과나무 앞에서 열매 하나를 얻기 위해 / 나무에게 말을 걸던 만년 전 사람을 떠올린다/.../사슴 한마리 앞에 인간 한마리로 온전히 대결하던 조상을 떠올린다'('마스크에 쓴 시 2'에서. 62쪽)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사이'는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다른 존재들 사이에도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울 때는 자신의 관점에서 채우는 것이 아니다. 상대와 나를 둘 다 존중하고 인정하는 상태에서 그 사이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 아닐까.
어느 한쪽으로 끌어당기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 그러니 동물들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동물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는 상대가 되어보는 일, 그것이 바로 사이를 채우는 일이라고 하는 듯하다.
이렇게 사이를 채우지 않고 자신 쪽으로만 끌어당기려고 하는 존재가 있으니, 시인은 그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다. 그 존재는 바로 자본이다. 자본은 성장, 성장 하면서 상대를 자신에게 속하게 만들려고 한다. 어느 것이든 있는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
계속되는 잠식. 이런 잠식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들이 살아갈 공간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고 시인은 보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멈추어야 한다고 외친다. 이 시집 곳곳에서 이렇게 멈추라는 말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멈추지 않으면 온갖 감염병으로 시달리게 되는데, 이 시집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삶의 모습이 제3부에 '마스크에 쓴 시 1~14' 연작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연작시에는 '멈춰야 해'라는 말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이런 감염병은 결국 인간이 다른 존재에게서 빌린 것이 아니라 '함부로 빼앗은 것들'이라고, 그래서'존재의 벼랑 앞에/한줄의 시로 부끄럽게 엎드린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이렇게 부끄러운 마음을 우리 모두가 지닌다면 '내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마스크에 쓴 시 13'에서 인용. 80-81쪽)
이렇게 시인은 인간들만의 관계에만 사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에는 사이가 있고, 이런 사이들을 채우되 한쪽으로 끌어들이는 채움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 사이에서 함께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그런 마음이 이 시집 전체에 나타나 있으니, 해설에서 말하고 있는 정리가 이 시집에도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시가 많은데, 이 시, 기억해두고 싶다. 어쩌면 사이를 채우는 일을 이렇게 잘 표현한 시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니까 사랑은, 꽃피는 얼룩이라고
네가 있던 자리에는 너의 얼룩이 남는다
강아지 고양이 무당벌레 햇빛 몇점
모든 존재는 있던 자리에 얼룩을 남긴다
환하게 어둡게 희게 검게 비릿하게 달콤하게
몇번의 얼룩이 겹쳐지며 너와 나는
우리가 되었다
내가 너와 만난 것으로 우리가 되지 않는다
내가 남긴 얼룩이 너와
네가 남긴 얼룩이 나와
다시 만나 서로의 얼룩을 애틋해할 때
너와 나는 비로소 우리가 되기 시작한다
얼룩이 얼룩을 아껴주면서
얼룩들은 조금씩 몸을 일으킨다
서로를 안기 위해
안고 멀리 가면서 생을 완주할 힘이 되기 위해
김선우. 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 2021년. 1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