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표지 사진을 보라. 지금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회사 이름이 나오지 않는가.
우리나라에서 큰 이익을 얻으면서 정작 회사의 주인은 미국 시민권자라고 하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면서도 미국 의회에 로비를 해서 미국이 우리나라 정부에 압력을 넣는다고 언론에 보도되는 회사.
피해 보상을 해주겠다고 하는데, 그 보상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상식에는 맞지 않는다고 비판받는 회사.
그럼에도 잘나가는 회사. 이들이 얻는 이익이 과연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내려갈까?
낙수효과라고 하는데, 그런 것이 있기는 있을까? 오히려 돈이 돈을 불리는 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표지 사진에 보면 신호등이 있다. 신호등에 노란불이 들어왔다. 경고등이다. 조심하라고... 아니 노란불이면 우선 멈춤 아닌가. 진입하지 않고 멈춰야 한다고. 아직 빨간불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더 나아가면 위험하다고.
사진이 기가 막히다. 빨간불이 되기 전에 적절한 순간에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삶창이라는 잡지도 그런 역할을 하지 않나 싶다. 노란불. 경고를 해주고 있는 것이지. 우리 삶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그래서 우리가 흔히 서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잡지가 바로 삶창이다.
이번 호도 역시 그렇다. 노동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기대한 것처럼 되어가고 있지 않다면, 지켜만 보지 말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국민이 주권자이니까, 당당하게 주권을 주장해야 한다고. 적어도 국민의 주권을 지킬 수 있는 정부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이런 글과 더불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들도 실려 있고, 다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글도 있고, 소설과 시도 실려 있다.
그렇게 우리의 삶을 살펴보게 하는 잡지인데, 이제 일 년에 네 번 나오던 계간지에서 일 년에 두 번 발행하는 반(半)연간지가 되었다고 한다.
[샘터]의 휴간에 이어 많은 잡지들의 발행이 어려워지고 있음을 또 한번 느끼게 되었다. 에고...왜 갈수록 삶이 퍽퍽해질까.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해가는 과학기술(의료기술)에 의하면 우리네 삶이 더 안락해지고 행복해져야 하지 않을까. 기술이 인간을 보조하기 위해 개발되어야 하는데, 기술이 이윤을 위해서 개발이 되고 있으면, 그런 사회는 '삶이 보이는 창'이 될 수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이번 호를 읽으면서 이윤이 사람을 누르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