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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츠와프의 쥐들 : 병원 ㅣ 브로츠와프의 쥐들
로베르트 J. 슈미트 지음, 정보라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평점 :
우선 이 편이 카오스와 철창에 이어서 사건이 전개되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하긴 읽지 않고 책이 출간된 순서를 생각하면, 그것도 지금까지는 세 권이 번역되었으니, 당연히 마지막 권이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지.
한데 앞장을 넘기자 이런 말이 책에 있다. 소설 시작하기 전에... '이 책은 [브로츠와프의 쥐들:카오스] [브로츠와프의 쥐들:철창]의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단독적인 서사로도 즐길 수 있습니다'라고 일러두기에 쓰여 있다.
어라, 그럼 이 편이 끝이 아니네... 첫부분을 보자마자 시간은 다시 사건 발생 당일로 돌아가 있다. 1963년 8월 9일 금요일 20시 27분부터 시작하니, 사건이 벌어진 지 약 1시간 정도 지난 뒤다. 끝은 1963년 8월 12일 월요일 19시 57분이니 [브로츠와프의 쥐들:철창]의 시간보다도 짧다. 그 소설에서 잠깐 언급한 장면이 이 편에서 펼쳐진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분명 [브로츠와프의 쥐들:철창]에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기 시작하긴 했지만 소련군이 들어와 약탈하는 장면으로 끝나고, 그곳 시립동물원이 있는 큰 섬에서 아렌지코프스키 의사가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햐, 이거 다른 편이 있다면 번역이 되길 또 기다려야 하네 하는 아쉬움... 그렇지만 이번 편은 앞의 두 권과 달리 조금 짧다.
300쪽 조금 넘으니, 700-900쪽에 달하던 전편들과 달리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앞의 소설들도 속도감과 긴장감이 넘치지만 분량이 하루에 읽기에는 좀 많았는데, 이번 권은 하루 만에 읽을 수 있다.
아니, 하루 만에 읽어야 한다. 그래야 이 비극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철창]에서 교도소로 가는 도중에 병원을 지나가면서 그들은 문 앞에 붙어 있는 글을 읽게 된다.
"들어오지 마시오.
모두 죽었음."
자, 이제 우리는 왜 이들이 이런 글을 붙였는지를 소설을 읽어가면서 알게 된다. 정신병원. 이곳 역시 격리 된다. 그리고 여기서 감염자가 발생한다. 최선을 다해 막으려 하지만 사소한 실수, 무관심 등이 겹쳐 좀비는 확산된다.
게다가 식량도 떨어져 가고, 간호사들과 위생사들 또 조리사들도 한 명 한 명 죽어나간다. 남은 사람은 수십 명의 환자들과 책임자인 니엠추크 과장뿐.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환자들을 살릴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의사로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환자들을 위하는 일이 될까?
이는 존엄사 문제와도 겹친다. 어떤 것이 환자를 위한 길일까? 니엠추크 과장은 '모든 의사가 지켜야 할 첫 번째 원칙은 '우선 해를 끼치지 말라'이다'(313쪽)는 철칙을 깨기로 한다.
그동안 그는 이 원칙을 지키려 애썼고, 비록 의식이 없는 환자,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환자라 하더라도 그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쪽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의사도 간호사도 게다가 조리사와 식량도 없는 상태에서, 감염병은 확산되고 구조될 가망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는 것뿐이었다'(313쪽)는 표현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는 환자들의 최후를 보지 못한다. 자신도 죽임을 당하기 때문인데... 죽임을 당하기까지 그와 병원관계자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이 편에 담겨있다.
여기서 재앙이 닥쳤을 때 대응하는 사람들의 유형이 나타나는데, 겁을 먹고 무조건 도망치려는 사람과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하는 사람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것도 자신들이 돌보아야 할 사람이 있을 때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특히 의사나 간호사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 소설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니엠추크 과장이 비록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그가 지닌 책임의식, 재앙에서 도피하지 않고 끝까지 환자들을 돌보려는 마음은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선의가 꼭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지는 않는다는 것, 재앙의 순간에서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 그런 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간호사들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분노했던 것은 이러한 전세계적인 재난 상황에서 권력자들은 제 목숨 하나 건지려고 안전한 곳으로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피신했다는 점. 그 이후에 그들은 재앙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
지금까지 읽었던 세 권에서 재앙에 대응하는 사람들은 모두 '대리'였다. 책임자는 도망치고, 그 책임을 떠맡은 '대리'들이 문제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펼쳐보이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당시 권력자들에 대하여 지니고 있는 의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을 위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실질적인 위험의 순간에는 제 자신의 안위만을 먼저 생각하는 권력자들... 전쟁 통에 먼저 도망가버린 대통령을 만났던 적이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러한 권력자들의 모습은 비판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권력자들이 국민들을 내팽개치고 도망쳤지만 책임감 있는 사람들은 국민을 위해 남는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재난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설은 폴란드 좀비들을 통해 재난 상황에서 인간들이 대처하는 여러 모습들, 권력자들의 비겁함, 그리고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다음 편이 있다면 빨리 번역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