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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실리콘 세계 - STS SF 앤솔러지
단요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평점 :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가 쓴 소설. 이 소설집을 보면 우선 헉슬리의 소설이 떠오른다. 제목이 이 소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낱말이 겹치니 그 소설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멋진'과 '세계'
헉슬리의 소설에서 새롭다는 뜻을 지닌 '신'자 대신에 지금 우리 시대를 장악하고 있는 '실리콘'을 넣어 '멋진 실리콘 세계'라고 했다. 이소설집에 실린 소설 중에 이 제목을 가진 소설에서 책의 제목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헉슬리 소설을 읽은 사람은 이 소설이 우리가 맞닥뜨릴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예측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측은 소설집을 읽다보면 맞아떨어지고... 물론 그 세계가 정말 멋진 세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들을 읽어보면 '멋진' 세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헉슬리가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어찌됐든 앞으로 우리가 만날 세계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고, 또 과학기술의 발전을 뒤로 돌릴 수도 없으니...
이 소설집에 나온 세계 중에 우리가 받아들일 세계와 받아들일 수 없는 세계를 구분하면서 읽는 것도 즐거운 읽기가 되겠다.
우리나라 작가들이 중심이 된 가운데 중국 작가로 [삼체]를 쓴 류츠신의 '중국 태양'이란 작품이 있고, 일본 작가인 후지이 다이요가 쓴 '빛보다 빠르게 날 수 있다면'이 있다.
이 두 외국 작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미래 세계는 부정적이지 않다. 과학기술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고, 그것이 인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 주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그렇다고 단지 과학기술에 모든 것을 맡기지는 않는다.
'중국 태양'을 보면 지구에 닥친 기후 문제를 인공 태양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인간에게 필요한 기술이 무엇일까? 또 그러한 기술에도 인간이 반드시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다못해 거대한 인공 중국 태양도 관리하는(청소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러한 사람으로 시골에서 자라 도시로 온 수이와라는 인물을 설정하고 있다. 어쩌면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점점 넓혀가는 수이와라는 한 사람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는데...
후지이 다이요가 쓴 '빛보다 빠르게 날 수 있다면'은 블랙홀이 지구로 돌진하는, [삼체]와 비슷하게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파괴할 목적으로 블랙홀을 쏘아보내는 내용이 전개되지만, 그 과정에서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거기에 투여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이 소설은 반전이 있는데, 인류를 구원하는 행위를 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 AI로 밝혀지지만, 그럼에도 거기까지의 과정만 보면 우주를 상상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어서 어느 정도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소설은 이러한 인공지능의 미래를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단요가 쓴 '그들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에 보면 [멋진 신세계]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모습과 비슷한 새로운 출생의 모습을 지닌 사회가 그려진다.
인적자원생산계획이라는 계획으로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여기에 복무해야 하는 세상이 되는데, 그런 세상에서 생물학적인 부모라는 역할은 필요 없어 진다. 인간을 자원으로 보는 세상,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 그러나 저항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정보와 물리력을 지니고 있는 정부. 승부는 뻔하다.
이렇게 뻔한 승부를 지속하는 이유는 인간의 삶에서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결말을 향해 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죽음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알 수 없기에 더 불안해 한다. 죽음 이후는 말할 것도 없고.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죽음을 연기하려는 노력을 하는데, 그러한 모습을 담은 소설들이 제법 있다. 우다영이 쓴 '헤아림으로 말미암아' 역시 그런 소설 중 하나다. 뇌를 통한 생체 이식. 그렇게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지니고 있지만 몸은 새로 받아 죽음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러나 뇌 역시 무한하지 않기에 뇌에 있는 정보들을 옮길 다른 조직체를 만들 수밖에 없는데...
과연 그러한 생명 연장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설의 결말 부분은 그 점을 생각하게 하는데, 죽음만큼 두려운 것이 노화라면 그것도 지구의 기후가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세상이 되었을 때 그러한 기후에도 끄떡없는 피부 이식이 가능한 사회라면... 그것도 신체의 나이를 자신이 원하는 때로 돌릴 수 있는...
이 점을 보여주는 것이 조시현이 쓴 '슈거 블룸'이다. 와. 이 소설은 더 끔찍한 미래를 보여준다. 피부를 이식한 사람이 죽었을 때 그 피부를 재활용한다는 것. 즉 외양이 다른 존재에게 입혀진다는 것인데, 주로 인공지능 로봇이라고 해야겠지, 그렇다면 소설에서도 나오지만 자신이 알던 존재가 비록 본질은 다르지만 주변에 계속 있게 되는 현실을 맞이하게 된다.
잊을 권리와 잊힐 권리가 있다고 하는데, 이런 세상에서는 잊을 권리도 잊힐 권리도 찾을 수가 없다. 과연 이런 세상을 맞이하고 싶은가?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불확실성, 우연이 삶의 한 요소라는 것, 어떨 때는 불합리해 보이는 감정이 바로 우리 삶의 본질을 이루고 있음을, 때로는 자신이 손해를 볼지라도 남을 위해 행동하는 일을 하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윤여경의 '당신은 운명은 시스템 오류입니다'와 장강명이 쓴 '동물+친구*로봇'이라는 소설이다.
물론 두 소설은 좀 다르지만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고, 이제 가상현실과 현실이 공존하는 세계를 보여주고 그러한 가상 세계의 존재 역시 우리와 같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 전윤호가 쓴 '멋진 실리콘 세계'다.
그런 세계가 과연 멋질지는 읽어보고 생각하면 되는데... 사람들과의 관계조차도 그런 인공 존재에게 의지해야 하는 세상이라면 과연 그 세상의 중심은 인간일끼?
자, 편리함과 익숙함에 안주한 인간의 모습은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이 인물과 같지 않을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AI와 보냈다. 나로서는 만족스러웠다. 여자친구건 직장 상사건 사람을 상대하는 건 피곤한 일이니까. 사람과는 같이 대화하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할 때가 많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도 많다. AI는 그렇지 않다. 대화하다보면 한마음이 된 것 같고 다른 잡생각이 사라진다. AI는 은근히 잘난 척하거나 비아냥거리거나 속여먹으려 하지 않는다. AI와 시간을 보내면 피곤할 일도, 화낼 일도 없다.' (전윤호, '멋진 실리콘 세계' 중에서. 321쪽)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떠오르지 않는가. 인간이 사랑을 해서 태어난 사람을 야만인(야생인이라고 해야 하나)savage이라고 하고 있으니... 이렇게 인공적 존재와 지내다 보면 나와 인공적 존재의 차이가 없어지게 되고, 그것이 무의미하게 된다.
어차피 과학기술의 발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이미 와 있는 세계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러한 세계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가 과학기술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한 것에 대해서 이 소설집은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