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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부탁해 ㅣ 소설x만화 : 보이는 이야기
박서련 지음, 정영롱 만화 / 문학동네 / 2023년 2월
평점 :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 제사. 엄격한 형식을 고수한다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일. 부모의 제사만이 아니라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 4대를 제사 지낸다는 종가집 맏며느리.
잊을 만하면 제사가 돌아오지 않을까? 부모의 제사를 함께 모셔도 명절 두 번에 네 번의 제사가 되는데, 부모를 따로 모시면 명절 두 번에 여덟 번의 제사. 그러면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제사를 지내야 한다. 이때는 잊을 만한 시간도 없다.
간소하게 지내면 괜찮겠지만 어디 그런가? 특히 종갓집에서는 더 심하다. 집안 사람들이 모두 모여 콩 심어라 팥 심어라 한다면 제사를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못 견딜 일이 된다. 얼마나 부담이 많이 되면 제사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곤 할까?
하지만 제사가 지니는 긍정적인 역할도 있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 또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것이 제사라고 한다면 형식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
살아 생전 본인이 좋아하던 음식 중심으로, 또 현대인의 생활에 맞게 시간도 조정하고 한다면 제사를 고인에 대한 애도 표현으로, 즉 고인에 대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부담이 아니라 고인과 관계 맺었던 사람들이 고인과 자신들의 마음을 잇는 시간으로 제사를 활용한다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도 제사는 여전히 힘든 일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제사를 대행하는 사람이 나온다. 집안일을 대행하듯이, 제사 역시 집안일 중 하나니까 대행을 할 수 있다. 주관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뿐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니까.
그런 설정, 지금 제사 대행업이 있는 줄은 모르겠는데, 음식은 해주는 업체가 있는 줄 알고 있지만 직접 절까지는 아닐 테지만, 소설에서는 절까지도 하는 대행업을 하고 있다. 하긴 중요한 것이 마음이라고 한다면야 뭐.
부정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이 있겠지만, 제사가 점점 없어지는 추세고, 이런 추세 속에서 가족들이 애도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제사 대행업체를 통해 제사를 지내는 일도 생길 수 있겠다.
아이들 돌잔치, 부모님들 회갑잔치(요즘은 거의 하지 않지만 더 연세가 드시면 잔치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 팔순 또는 구순 잔치 등)와 각종 상조회를 보라. 많은 집안일이 대행으로 바뀌었지 않은가. 그러니 제사 역시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리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마음을 다해 제사를 치러주는 인물을 통해서 결국 제사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마음을 잇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앞부분이 '둘이 먹다 하나가'라는 박서련이 쓴 소설이고, 뒷부분이 '죽어도 모르는'이라는 정영롱이 그린 만화다. 소설은 제사 대행업을 하는 수현의 관점에서, 만화는 죽은 정서(이름을 바꾸기 전에는 영란)의 관점에서 전개가 된다. (소설에 나오는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속담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같은 사건을 다른 두 화자가 서술하고 (보여주고) 있는데, 소설도 소설로 읽어도 좋고, 만화도 만화로만 봐도 좋다. 두 작품을 함께 보면 더욱 좋고. 물론 책의 순서대로 소설부터 읽어야 한다. 수현이 정서의 집으로 가고, 제사상을 차리는 장면까지가 소설이니까. 그 다음 부분이 만화에서 더 이어지니.
두 작가의 작업이 이렇게 잘 맞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설과 만화가 잘 연결이 된다. 그러면서 마음을 여는 장면을 만나면서 감동을 받게 된다. 제사 역시 그렇다. 제도와 형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애도하는 마음, 즉 마음을 잇는 일이라는 점을 소설과 만화가 잘 보여주고 있다.
하여 작품은 제사의 문제점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 죽은 사람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일, 그것은 또 산 사람들의 마음과도 잇는 일임을 생각하게 된다. 애도하고 추모하는 방식으로서의 제사를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대행업체에 맡기든 본인들이 직접 하든지 간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제사가 되도록, 산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는 제사가 아니라 산 사람들의 마음도 풀어주는, 그래서 죽은 사람의 마음이 당연히 풀리는 그러한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 제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에서 더 좋은 것은 소설가와 만화가, 그리고 편집자가 이 작품을 위해서 주고받은 내용들이 실려 있다는 점이다. '창작일지'라는 이름으로. 그것 역시 좋았다. 이런 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이.
짧지만 긴 울림을 주는 소설과 만화다. 좋았다. 이런 작품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이 작품집 중 소설에 나오는 한 부분을 인용한다. 진정한 제사란 바로 이런 것. 화려하고 형식, 규격에 맞는 제사가 아니라. 하, 이런 제사. 누가 무어라 할 수 있겠는가.
'제사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제사상 앞에 이부자리를 편 부부의 이야기다. 부부는 해도 지지 않은 초저녁에 상을 차리고 제사상을 받으실 시어미니 묘까지 산보를 다녀온다. 돌아온 후에는 상 앞에 자리를 갈고 잠깐 누웠다 다시 어머니 묘에 간다. 그렇게 날이 저물기도 전에 제사가 끝난다. 어느 해에 제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유식한 학자가 그 집 앞을 우연히 지나다 부부를 보고 무슨 짓이냐고 묻는다. 남편은 대답한다. 어머니가 늘 말씀하신 소원이, 내가 금슬 좋은 부부 사이를 이루는 것이었으니 아내와 사이좋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마땅하고, 어머니는 눈이 어두워 밤길을 다니지 못하시니 모시러 갔다 다시 모셔다드리는 게 이치지요. 학자는 그들의 제사야말로 가장 훌륭한 제사임을 인정하고 만다.
제사란 그런 것이다. 결국은 마음이 으뜸이고 형식은 거들 뿐.'(44-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