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배 시인을 몰라도 이 시집을 읽으면 시인의 개인사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또한 시인이 교류했던 문인들, 스승으로 모셨던 분들도 이 시집을 통해 알 수 있고.


  그렇다고 이 시집이 어렵냐 하면 전혀 아니다. 아주 쉽다. 읽기에도 쉽고 내용도 쏙쏙 들어온다. 이토록 쉽게 시를 쓸 수 있다니, 그런데 이 시들이 이렇게 마음에 들어오게 되다니 하는 마음에 경탄하게 된다.


  자고로 고수일수록 단순해진다고 했던가, 김명국이 그린 '달마도'를 보면 선 몇 개로 달마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달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드러나게 했으니, 시 역시 마찬가지다.


어려울 필요가 없다. 쉽게 사람들 마음에 다가가게 하면 된다. 그런 시인이 내겐 좋은 시인이다. 머리를 쥐어짜게 하는 시가 아니라, 

도대체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고민하면서 읽어야 하는 시가 아니라, 

엄청난 상징 속에서 헤매게 하는 시가 아니라, 

평이하게 그러나 읽을수록 운율이 느껴지고 또 마음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시.


이근배 시인의 시들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간결한 언어, 단순한 언어. 그러나 그러한 언어들의 조합으로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이 들어 있고, 우리나라 역사적 인물들의 삶이 들어 있고, 그의 개인사가 들어 있다.


읽으면서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그러니 시인의 첫시인 '절필'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붓을 꺾는다는 의미의 절필은 작품 활동을 그만둔다는 말로 쓰는데, 작품 활동을 그만둔다는 말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절필을 선언하는 문인은 이미 한 자리에 들어선 문인이다. 그는 정점에 올랐기에 거기서 멈출 수가 있다. 그렇지 못한 문인들이 절필을 한다고 하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는 더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지니고 '절필'을 읽어보면 시인은 아직도 자신이 정점에 서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작품이 아직 나오지 않았음을, 그러므로 절필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에는 좋은 시를 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시를 보자.


 절필絶筆


아직 밖은 매운 바람일 때

하늘의 창을 열고

흰 불꽃을 터뜨리는

목련의 한 획,

또는

봄밤을 밝혀 지새우고는

그 쏟아낸 혈흔血痕을 지워가는

벚꽃의 산화散華,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드는

단풍으로 알몸을 태우는

설악雪嶽의 물소리,

오오 꺾어 봤으면

그것들처럼 한 번

짐승스럽게 꺾어 봤으면

이 무딘 사랑의

붓대.


이근배, 사람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문학세계사. 2004년. 11쪽.


절정에 이르러서야 사그러지는 그러한 자연. 자연을 닮고 싶은, 짐승스럽게라고 했지만 이는 자연이 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보겠다는, 작품도 그렇게 쓰고 싶다는 소망이 담긴 말이라고 하겠다.


앞뒤 가리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 그럴 때 정점에 도달할 수 있고, 절필도 할 수 있다. 시인의 바람. 그것은 시인의 바람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역시 삶에서 불꽃을 피울 때를 기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로 이 시를 읽었는데... 나도 내 삶에서 이렇게 꽃을 피워야지, 불꽃을 쏘아 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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