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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전쟁 - 가장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공간에서 펼쳐진 특권, 계급, 젠더, 불평등의 정치
알렉산더 K. 데이비스 지음, 조고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화장실. 인간 생활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식사와 배출은 우리 인간이 생존하는데 하지 않을 수 없는 행위 아닌가.
이런 화장실을 두고 갈등이 있었다. 지금도 있다. 어떤 화장실이냐에 따른 갈등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성중립 화장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를 두고 갈등이 일기도 했다.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공간 아니냐고, 아직도 케케묵은 윤리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성중립 화장실에 대해서 찬성하고 있다.
누구도 눈치보지 않고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 화장실을 놓고 다양한 갈등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젠더 갈등으로만 국한시켜 보자.
예전의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없었다. 누가 힘들었을까? 여성이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법적으로 인정하는 단 두 성만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화장실 문제 또한 제기할 수밖에 없다.
남녀 분리 화장실이 만들어진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성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남녀 분리 화장실이 만들어졌다. 거의 같은 크기로?
다시 문제가 된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시간이나 행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도 심심찮게 보는 모습이 남녀 화장실 앞에 줄이 길다면 이는 십중팔구 여성화장실 앞이다.
그래서 화장실 비율이 대두되었다. 남자 변기보다 1,5배 이상 많은 변기를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 그것이 받아들여져 여성의 화장실이 더 확장되어 편리를 증진시키고 있다. 이게 평등일까?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트랜스젠더와 같은 사람들은 어느 화장실을 이용해야 할까다. 그러니 이제는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렇게 만든다. 성중립 화장실을 만드는 과정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이러한 화장실을 두고 겪어온 갈등들도 잘 나와 있고.
성중립 화장실을 만드는 문제가 미국의 진보적인 대학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들의 진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으니... 또한 그러한 대학들은 지명도만큼이나 재원을 쉽게 확보할 수 있었기에 빠르고 쉽게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다른 계급, 계층의 문제가 발생한다.
화장실을 두고 단지 성별 갈등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특권층은 이상하게도 진보적인 문제에 쉽게 접근한다. 그리고 수용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들의 특권을 뒷받침하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곳이 있다. 법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남녀 분리 화장실이 있는 곳에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려고 하면 배관의 문제, 즉 건축의 문제가 발생한다.
쉽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에 만들고 싶은데, 기존 건물이 지니고 있는 환경이 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화장실에는 역사가 개입한다. 문화와 건축이 개입한다. 또 재력, 돈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각 장에 걸쳐서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중립 화장실은 확산되어 나갔다. 지금도 확산 중이다. 왜냐하면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가족들, 장애인들,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모두에게 이로운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즉 사회적 약자층이 쉽게 이용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건축, 시설의 기준을 약자에게 두어야 한다. 가장 접근하기 힘든 사람이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여 이렇게 만들어진 화장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사회적 편리가 증대한다. 여기에 많은 젠더 갈등들이 있었지만, 조금 더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하는 쪽으로 화장실이 개선되어 왔음은 자명하다.
왜 화장실인가 했더니, 이 화장실에 젠더 갈등을 볼 수 있는 요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관습과 문화 또 갈등들을 볼 수 있고, 특권층이 오히려 더 쉽게 화장실을 개선하고 있었다는 다소 의외의 모습 (그것이 바로 자본의 힘이기도 하고, 그들이 계속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약자들에겐 도움이 되는 방향이기도 했다)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화장실은 단지 젠더 차원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장애-비장애, 부유층-빈곤층, 명문대-비명문대, 보수-진보, 관습-개혁 등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래서 지금 화장실을 보면 어떻게 사회의 관습이 변해왔는지를 파악할 수가 있으니... 성중립 화장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