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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평점 :
어둠에 속도가 있을까? 속도는 이동이다. 단지 공간만이 아니라 다른 것에도 속도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속도는 움직임이다. 그런데 어둠이 움직임일까? 어둠은 정지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 소설을 읽다가 어둠도 움직임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둠이 그냥 오지 않으니까. 어둠은 빛과 상반되어 나타나니까. 그런데 빛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어둠을 인식해야 하니, 소설의 인물이 말한 것처럼 어둠의 속도가 빛보다 빠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어둠을 비유로 쓰면? 안 좋은 것을 어둠이라고 한다면 안 좋은 것은 좋은 것보다 빠르다? 그럴 수 있을까? 부정을 어둠이라 한다면 부정은 긍정보다 빠르다? 어둠을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보면 밝혀지지 않은 것은 밝혀진 것보다 늘 앞에 있다.
우주는 암흑으로 가득차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빛을 본다. 빛을 보면서 어둠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미 와 있는 존재인 어둠이 우리의 인식에 들어오려면 빛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는 무엇일까? 정상을 빛이라고 하고 비정상을 어둠이라고 한다면, 비정상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정상을 생각할 수 있나?
정상 가족이라는 말은 비정상 가족을 상정하고 하는 말일 테니, 이미 존재하는 것 중에서 정상이라는 말을 한다면 다른 것들은 비정상이라는 개념에 갇히고 말 것이다.
하여 요즘엔 정상 가족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 한다. 가족의 다양한 형태일 뿐이라고... 수많은 가족의 형태가 있을 뿐인데, 그 중 어느 가정의 유형을 정상이라고 하면 나머지는 비정상이 되어 버리니까.
가정이 그렇다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정상인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비정상인이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보면 사람을 틀지우게 된다. 이 틀에 맞지 않으면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났다고...
그런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정상의 범위에 들어오게 해야 한다고... 그들의 어둠을 빛으로 사라지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눌 수 있을까?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빛과 어둠이 함께 있는 곳, 우리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우주의 대부분이 암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람은 그만큼 어둠 속에 있다고, 먼저 그러한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그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빛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이 어둠을 안 좋은 쪽으로, 바꿔야 하는 쪽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오히려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면서 그 다양함에 감탄해야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다.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 그런 사람인 루 애런데일을 서술자로 선정해서 소설을 이끌어 간다.
덕분에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의 사고 방식으로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가 의미 없이 하는 말과 행동들이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돌아보게 된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내 틀에 집어넣고 그 틀 속에서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는지,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틀을 지니고 살고 있음을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루 애런데일을 따라가면서 사람들은 각자 고유한 자기들의 삶을 살고 있음을,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함을 생각한다. 그들을 치료할 기술이 나왔다고, 임상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때도, 외부에서 당신들은 치료를 받아야 해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올리려는 회사(관리자)와 치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인들의 고민, 그리고 선택.
그의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옳지 않았는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는 변화의 갈림길에서 자신이 길을 선택했다. 그것이 과거와는 다른 자신이 될지라고 그 선택은 존중되어야 하고, 알지 못했던 어둠을 향해 자신이 스스로 나아갔다.
이런 루 애런데일을 따라가면서 흥미롭게 읽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