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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에메랄드 시 - 완역본 ㅣ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6
L. 프랭크 바움 지음, 최인자 옮김, 존 R. 닐 그림 / 문학세계사 / 2010년 5월
평점 :
현실에서의 궁핍. 노동자라 할 수 있는 도로시의 보호자인 헨리 아저씨와 엠 아주머니는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파산을 하게 된다. 노동자들이 처한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파산에 직면해서 도로시가 선택한 것은 오즈로 가는 것.
현실 도피인가? 아니 현실에서 바라는 것들을 우리는 환상 속에서 실현하려고 하지 않나. 그런 꿈을 꾸는 것은 어려운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도록 하지 않나.
도로시 가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어려움 속에 빠져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오즈다. 물론 현실세계에서 이러한 돌파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어린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에서 파멸되어 가는 모습을 그리기보다는 그것을 이겨내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이렇게 도로시 가족은 오즈마 공주의 도움으로 오즈로 가게 된다. 이번에는 도로시도 아주 오즈에 정착할 작정으로.
오즈에 도착해서 신기한 존재들을 만나는 헨리 아저씨와 엠 아주머니. 도로시는 오즈를 여행하면서 신기한 존재들을 더 만나게 되는데, 이런 장면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신기한 존재들은 빵과 쿠키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종이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퍼즐 나라, 주방 기구들의 나라, 토끼들의 나라도 가고, 또 횡설수설과 호들갑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도로시는 횡설수설 사람들을 만나면서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여러 부류의 존재들을 만나면서 그들 특성에 맞게 관계를 맺어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 행동이 다른 존재들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사람의 재채기에도 날라가 버리는 종이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여기에 아무리 행복한 오즈라고 하지만 위협이 없을 수는 없다. 놈 왕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오즈를 정복하러 오게 되는데...
이때 오즈마 공주의 선택은 싸움이 아니다. 사람들이 다치는 것이 싫다는 것. 결국 마법의 샘물로 그들을 물리치지만, 평화를 유지하는데 전쟁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오즈마 공주의 선택이 좀 다르긴 하지만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이 생각난다. 바보 이반 역시 왕이 되어서도 전쟁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 전쟁은 필요 없는 행위다. 오즈마 공주 역시 마찬가지다. 망각의 샘물로 처들어온 적들의 기억을 지운다. 사악한 기운을 지우는 것.
자신들의 쾌락만 생각하고 남의 불행을 오히려 자신의 행복으로 삼는 존재들에게 그러한 기억을 지우는 것. 남에게 군림하려는 기억, 남을 약탈하려는 기억, 그러한 기억을 지움으로써 오즈는 다시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오즈에 다시 이러한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이 있나? 또 오즈의 외부, 즉 오즈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오즈로 온다면? 하여 착한 마녀 글린다의 도움으로 오즈는 외부에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진다.
이것은 과학기술로 인해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된 현대인의 기술에 대한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스스로 잘 살고 있던 공동체를 과학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이 파괴했는지를 생각하면, 오즈를 외부의 눈길로부터 차단한 것이 이해가 된다.
이렇게 오즈는 이제 차단이 된다. 어린 독자들은 오즈가 다른 세계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환상의 세계는 계속 환상 속에 남아 있어야 한다.
즉 모든 것이 보이는, 보여지는 삶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어야 한다. 남이 알지 못하는. 그러면서 그 세계 속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우리는 어쩌면 과학기술로 그러한 세계를 파괴했는지도 모른다.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중에 이번 편을 읽으면서 현대 과학기술 문명이 스스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파괴할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현대 문명을 접한 공동체는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왕이 된 토끼가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모습에서 찾을 수 있으니...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문명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문명이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작가는 [오즈의 마법사]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