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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문학 선집 1 - 1898년~1920년대 중반 여성문학의 탄생 ㅣ 한국 여성문학 선집 1
여성문학사연구모임 엮음 / 민음사 / 2024년 7월
평점 :
제목을 여성문학의 탄생이라고 했지만, 사실 여성문학은 예전에도 있었다. 알려진 것만 해도 조선시대에 한시를 쓴 사람부터 가사 작품에는 여성이 쓴 작품들이 꽤 있었으니, 근대 여성문학의 탄생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여성문학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은 여성이라는 자각을 담은 문학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겠지만, 조선시대 문학에도 여성의 자의식을 담은, 여성이라서 겪는 어려움을 표현한 작품들이 꽤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남녀평등이라는 개념이 사회에서 통용이 되고, 실현이 되는 것은 근대에 들어서라고 할 수 있으니, 근대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등장으로 이제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것들이 서서히 여성들도 할 수 있는 일로 인식되고, 또 실제로 한 여성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책은 한국 여성문학 선집 7권 중에 첫번째 권이다. 근대 들어 여성들을 중심에 놓는 글쓰기를 다루고 있다. 처음부터 여성문학이라고 하지만 이 책에는 주장하는 글도 있고, 잡지의 창간사도 실렸다. 물론 소설과 시, 희곡도 실렸으니...
통상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이라고 불리는 이광수의 [무정]이 1917년에 나왔는데, 여기에 결코 뒤처지지 않게 여성문학도 나왔다. 즉 근대 들어서는 남성과 여성의 활동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문학에 여성들이 뒤늦게 참여한 것이 아니라 근대문학에는 남녀가 거의 동시에 참여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성의 참여가 동시성이 있다고 해도 인정을 동등하게 받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단적인 예가 바로 김동인의 [김연실전]이다. 여기서 김동인은 당시 신여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비꼬고 있는데, 그만큼 여성들은 근대 들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비슷한 시기에 작품 활동을 했더라도 편견을 지닌 시각으로 판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편견을 딛고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들이 있다. 이 책에서 다룬 김일엽, 김명순, 나혜석이 바로 그들이다. 나혜석이 쓴 [경희]만 하더라도 1918년에 쓰였다. 이는 [무정]과 별 차이가 나지 않게 발표되었다는 점이고, 여기서 신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경희의 고민과 결단이 잘 드러나 있다.
여성도 남성과 같은 동등한 인간이라고... 남성 여성이기 전에 사람이라고, 그 사람이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이들은 자신들의 글에서 주장하고 있다.
동등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물질적으로 독립이 되어야 하나, 물질적 독립 이전에 먼저 정신적으로 독립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주체로 설 수 있는 마음, 정신을 지녀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각종 단체를 세우고, 다양한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김일엽이 쓴 '우리 신여자(新女子)의 요구와 주장'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는 믿습니다. 정신상의 굴복은 물질상의 굴복에 반(伴-따르는)하는 것임을. 그러기에 완전히 정신상의 자유를 얻고자 하면 반드시 또 물질상의 자유를 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질적 자유의 욕구는 먼저 정신적 자유의 동경으로 우리의 두뇌 중에 나타나는 것이로소이다. 그리고 열렬한 정신적 자유의 동경이 있은 연후에 진실한 물질적 자유의 욕구가 생기는 것이올시다. 하므로 우리는 신시대의 신여자로 모든 전설적, 인습적, 보수적, 반동적인 일정의 구사상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면 아니 되겠습니다.' (234쪽)
이러한 사상을 작품에 담아 활동하기 시작하는 때, 바로 근대다. 그리고 이 근대에 자신들의 문학세계를 구축한 작가들이 등장했다. 개화기(애국계몽기)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무슨무슨 '소사(召史)'로 나오는 여성들이 있지만 곧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자신의 이름을 갖는다는 것, 그것은 종속된 존재가 아닌 주체적인 존재로 서게 되었다는 의미고, 아직은 물질적 독립을 이루기 힘든 시기이기는 하지만 독립된 생활을 해야만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각이 일어난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독립하려고 해도 앞선 여성들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그러한 여성들을 과거의 여성으로만 보려고 하는 남성들도 많고... 이런 현실이 김명순의 희곡 [두 애인]에 잘 나와 있다.
같은 여성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동경했던 남성들에게는 버림받은 신여성의 모습.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려는 모습이 이 희곡에 잘 나와 있다. 이제 이러한 여성들은 사회에서 당당한 주체로 서게 된다. 그 다음 시대에... 하여 1930년대에 가면 우리 문학사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여성들이 등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