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962-1985 - 생명의 씨앗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프랭크 허버트 지음, 유혜인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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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이다. 발표된 연대 순으로 묶었기에, 이번 권에서는 1962년부터 1985년까지의 작품이 실려 있다. 영화 '듄'을 보지 않았고, 소설 '듄'도 읽지 않았기에 그 내용이 무엇인지 몰라서, 듄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단편들이 있다는데, 그것이 내게는 큰 의미를 주지 않았다.


그냥 SF소설이라고, 그런 소설들이 시대와 배경만 다르지 우리 인간들의 삶을, 인간 사회를 표현하고 있다고 여기고 읽을 뿐이다. 이 소설집도 다양한 배경,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 인간이 만약 다른 행성으로 이주를 한다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 두 편이 마음에 남는다.


하나는 '생명의 씨앗'이고 또 다른 하나는 '피아노 수송 작전'이다. 둘 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낯선 곳으로의 이주를 주제로 삼고 있다.


만약 우리가 낯선 우주의 다른 행성에 정착해 살아야 한다면 과연 지구와 똑같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그 행성을 지구와 똑같이 만들어야 할까? 오히려 그 행성에 인간이 맞춰야 하는 것 아닐까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생명의 씨앗'이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지닌 행성을 발견하고 인간들이 이주해 살아가도록 한다. 초기에 정착하기 위해서 지구에서 씨앗들을 가지고 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행성에서는 지구의 씨앗들이 살아남지 못한다. 다른 생명들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왜 그럴까 고민한다. 그리고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게 살아남은 생명체인 '매'에게서 답을 찾는다. 그렇다. 정착한 행성을 지구와 똑같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행성에 인간들이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식물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다. 이것이 진화 아니겠는가.


진화론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행성에서 살아가려 할 때 지구와 똑같은 조건, 똑같은 생물들로, 지구에서와 같은 삶을 살려고 하면 과연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지구와 완전히 똑같을 수 없다. 그 행성은 그 행성대로 수억 년 또는 수백 억년 동안 자신의 환경을 구축해왔다. (현재 우주의 역사를 약 138억 년이라고 하니, 그에 맞추면)


그렇다면 그 행성은 그 행성 나름대로의 생존 방식이 있다는 말이다. 지구에서 씨앗을 가져갔다고 해서 지구에서와 같은 성장을 바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행성에 맞는 성장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그 행성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


바로 지구에서와 다른 선택을 한 호니다와 크로다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간 중심주의를 고수하는 과학자들은 그걸 인정 안 할 수도 있다. 이 소설에서처럼.


'과학자들은 인정하지 않을 문제였다. 그들은 이곳을 또 다른 지구로 만들려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 행성은 지구가 아니었고, 지구가 될 수도 없었다. 들여온 생물들 가운데 매가 가장 먼저 이 사실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크로다는 그렇게 생각했다.' (429쪽)


과학자라면 지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진화의 경로를 인간들이, 다른 생물들이 밟아갈 수밖에 없음을 깨달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틀에 갇힌 과학자들은 다른 행성을 지구에 맞추려 할 것이다. 바로 이 소설에서 비판하고 있는 과학자들처럼.


하지만 생활에 밀착한 사람들은 과학자와 다른 것을 발견한다. 소설의 크로다가 발견한 것처럼, 그들은 지구가 아닌 행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자신들이 바뀌어야 함을, 지구와 같은 생활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살아가려 한다. 그것이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다른 행성에 이주한 인간들이 마주칠 일들이다.


'피아노 수송 작전'은 이주하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는가? 우주선에 실을 짐의 무게가 정해져 있다면... 


전혀 낯선 곳으로 가는 인간들이 꼭 가지고 가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과연 여기에 예술이 포함될까? 작가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본다. 예술은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다른 행성으로 가더라도 예술도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는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간다. 물론 그곳에서 조립을 하면 된다. 그러나 과거에서부터 전해져 온 예술품과 같은 피아노라면? 완전히 다 가져가지 못한다면? 일부라도, 아니 과거를 인식시키는 부분이라고 가지고 가야 하지 않을까?


피아노의 무게 때문에 가지고 갈 수 없다고 하지만 자식이 이 피아노가 없으면 죽을 것 같다고 느낀 부모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니, 숨겨서 가져갈 수 없기에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도 조금 양보해야 하고.


이런 과정이 이 짧은 소설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아직까지 화성도 가보지 못한 인간이 낯선 은하로 가서 살아야 한다면, 정말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갈까? 그런 이주에는 무엇이 필요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이밖에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할 소설들이 꽤 있다. 타임머신을 생각하는 소설도 있고, 과거에서 사람을 데려온다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도 있고. 


무엇보다도 앞에서 언급한 두 소설처럼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들이 있어서 좋다. 그것이 소설이 보여주는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듄]을 읽어봐야겠다. 적어도 그의 세계관을 잘 드러낸 소설이라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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