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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952-1961 - 오래된 방랑하는 집 ㅣ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프랭크 허버트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2월
평점 :
SF소설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관심을 가진 때가 달라진다. 어릴 적 웰즈의 소설들을 SF라고 한다면 그때부터 이런 종류의 소설에 관심이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소설을 장르로 구분하고, 그런 장르들이 고정불변인양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하지만 르 귄의 소설이나 버틀러의 소설, 클라크나 아시모프, 하인라인 등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종류를 SF소설이라고 한다면 최근에 관심을 가졌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이들의 소설에 관심을 가지니 우리나라 작가 중에 김초엽이나 천선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SF소설을 공상과학소설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 삶을 다른 세계로 옮겨갔다고 볼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간접 경험을 하게 하는 데 이런 소설보다 더 좋은 소설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감정이입을 최대한 미루면서 한 발 떨어져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프랭크 허버트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사실 영화도 보지 않았고, [듄]이라는 소설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가 없는 작가였는데, 이 작가에 대한 평이 좋고 [듄]에 대한 평도 [반지의 제왕]에 비긴다는 말도 있으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
이 작가가 쓴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1952년부터 1961년 사이에 쓴 단편들을 모아놓았는데, 읽으면서도 이게 그 때에 쓰인 소설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 쓰인 SF소설에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소설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러 상황이 교차되고, 우주인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인간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중에 짤막한 소설인 '무능자'를 보면 인간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인류가 특이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로 분화된 세상이다. 어떤 이는 이동의 능력을, 어떤 이는 불을 피우는 능력을, 어떤 이는 미래를 보는 능력을 등등 각자 자신만의 능력을 지니고 태어나고, 그 능력을 발휘하면서 사는 세상이 된다.
그렇다면 미래를 보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미래가 보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미래는 이미 고정되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다다. 이것이 인간의 삶일까?
이미 정해진 대로 사는, 마치 성경의 '예정 조화설'대로 이미 신께서 예비하셨더라는 식으로 되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세상에서도 아무것도 아닌, 어떤 능력도 지니지 않고 태어난 무능자가 있다. 그리고 유능자들이 결합을 해도 무능자들은 계속 태어난다. 그렇게 무능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될 수도 있다.
소설에서는 그런 사회를 끔찍하게 여기지만, 현실은 어떠할까? 자신의 삶이 그대로 정해져 있다면? 자신은 그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이 행복한 삶일까?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다는 피하지 못할 운명을 지니고 있지만, 태어남에서 죽음까지의 과정에는 예측하지 못할 수많은 변수들이 있고, 그러한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운명을 만들어가지 않는가, 그것이 바로 인간의 삶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무능자들이 태어난다는 사실은, 기계적으로 정해져 있는 틀을 벗어나는 자율적인 인간의 삶이 탄생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꼭 저주가 아니라 축복일 수도 있음을. 그래서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우리가 알아서 해 나가야 한다면,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나간단 뜻이다. 고정되지 않은 미래. 그리고 참견쟁이 예지자들도 우리를 귀찮게 할 수 없다. 여자로서 그게 좀 마음에들었다. 특히 결혼 첫날밤에는.' (213쪽. '무능자' 끝부분)
짧은 이 소설이 현대에 쓰였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만큼 최근에 나오는 SF소설과 구별할 수 없다. 그래서 시대를 넘어서 SF란 미래를 선취해서 우리들의 삶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고도 할 수 있다.
아니 꼭 SF라고 하지 않아도 소설이나 다른 문학 작품들, 예술 작품들이 이런 역할을 해왔기에 인간의 역사와 함께 예술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 '무능자'말고도 '사격 중지'와 같은 소설은 압도적인 무기가 과연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무기로 평화를 얻을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한 답을 이 소설을 통해서 고민할 수가 있다. 그만큼 좋은 소설은 지금 우리에게 질문을 하게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사고의 과정이고 성숙으로 가는 길이 된다.
이 소설집 역시 SF라는 이름에 걸맞게 외계와 접촉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는 소설들이 많다. 그렇지만 외계를 정복의 대상이거나 침략의 주체로만 보지는 않는다. 물론 그런 소설들이 있기도 하다. 없을 수가 없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 그것은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본능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이질적인 존재와 함께하는 모습을 꿈꾸는 것도 인간이다. 이 소설집에는 그러한 것들이 함께하고 있다.
한편 한편 음미하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들이고, 이제 이 시기 이후의 단편집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 소설들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