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하우스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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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부분부터 뭐야?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번역으로 읽어서 원문의 문체를 모르겠지만, 적어도 번역문에서 독특한 문체를 느낄 수 있다.


소설인데, 탁-탁-탁 하는 리듬을 느낄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짧은 문장들이 계속 나온다. 이토록 간결한 문장들이 연속될 수 있나 싶을 정도다. 게다가 같은 단어들, 같은 문장들이 반복된다. 상황도 반복되고. 


음악에서 도돌이표가 있는 듯이 소설은 계속 나아가다 돌아가고 또 나아가다 돌아가고, 반복, 반복의 연속이다. 이런 문장들 속에서 리듬을 느낄 수 있다.


첫부분을 보자. 짧은 문장. 반복되는 문장을 만나게 된다. 이런 부분이 또 계속해서 나온다. 자꾸 앞으로 돌아가, 돌아가 하는 듯이. 도돌이표. 불안에 싸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도돌이표와 같지 않을까, 그런 점을 표현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하는 문장들의 반복이다.


'나는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불안감이 엄습하여 나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 불안감이 엄습해 온 것은 바로 지난 여름이었다. 나는 적어도 10년은 보지 못했던 크누텐과 다시 마주쳤다. 크누텐과 나, 우리는 늘 함께였다. 내게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불안 증세로 내 왼팔, 내 손가락이 쑤신다. 난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8쪽)


인물이라고 해봐야 겨우 셋인데, 아니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둘인데, 이름이 나오지 않는 '나'와 '크누텐'


'나'는 시작부터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그는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그런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서 글을 쓴다. 글쓰기가 치유의 한 방식이지만, 여기서 글쓰기는 치유가 되지 않고, 그의 불안감을 계속 심화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불안감을 계속 떠올린다. 왜 불안한가? 별것도 아니다. 그 별것 아닌 것이 별것이 되는 것. 이 소설이 지닌 장점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다치는데, 뒤로 가면 '크누텐'이 서술자가 되는 부분들이 있다. 이상하게 다른 인물인데도 이들의 서술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비슷하다. 둘다 무언가 모를 불안에 차 있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냥 감정을 안으로 안으로 들여 자신의 행동을 제약한다. '나'도 그렇고 '크누텐'도 그렇다.


이러니 이들은 어릴 적 친구라고 해도 계속 어긋날 수밖에 없다. 나와 크누텐의 관계만이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도 잘 관계 맺지 못한다. 무언가 계속 어긋난다. 크누텐의 아내와 만나는 장면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런 만남을 크누텐에게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은 크누텐도 마찬가지다. 무언가가 관계를 맺는데 실패하게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안으로만 들어가는 태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트하우스라는 낡은 곳, 아무도 찾지 않는 곳. 그래서 어린 시절 그들의 피난처이자 놀이터이기도 했던 그곳이 나오지만, 그 보트하우스처럼 '나'도 '크누텐'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제 자리에서 쇠락해갈 뿐이다.


보트하우스는 그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장소가 되는데, 그들에게 의미가 있던 그 장소가 이제는 그냥 쇠락한 공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만큼 자신들을 옥죄고 있는 불안들도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마음 졸이고, 불안에 떨던 많은 상념들이 삶에는 별다른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관계는 파탄날 뿐이다. 크누텐이 아내와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유가 어린 시절의 어떤 경험때문이라면, 그런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보트하우스처럼 그 자리에서 그냥 낡아갈 뿐이라는 것, 자신의 삶을 갉아먹을 뿐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 점은 '나'도 마찬가지다. '나'가 변변한 일자리도 갖지 않고, 그나마 어린 시절부터 해오던 연주일을 하던 것에서 이제는 집 안에만 처박혀 글만 쓰는 일은 관계의 파탄이다. 외부와 연결돼 있던 끈을 놓아버리고 만 것.


하여 인물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데, 그런 짜증을 작가는 짧은 문장들을 경쾌하게 배치함으로써 누그러뜨리고 있다.


이들의 우유부단함, 관계맺기의 실패 등이 경쾌한 문장으로 소설을 끝까지 읽어가게 만들고 있다. 아마도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문장이 짧고 경쾌했다는 사실은 남을 것 같다. 


자신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생각들의 늪을 작가의 문장처럼 날렵하고 경쾌하게 벗어던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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