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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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도덕적 감정'은 내려놓아야 한다. 도덕적 감정을 앞세우면 읽기 힘든 소설이다. 살인자들의 이야기라니... 그것도 살인을 방역이라고 지칭하다니. 살인자들을 방역업자라고 하다니.


세상에 죽어야 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사람을 마치 해충 취급하면서 방역을 해야 한다는 의뢰를 받고 청부살인을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니... 자신이 죽였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까지는 없애지 못하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무감각해지고, 죽은 이들 뒤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그런 주인공이라니...


읽으면서 주인공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데, 그런데 소설에는 반전이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청부업자가 어느 순간 마음 쓰는 사람이 생긴다. 일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우선은 버려진 개를 데려와 키운다. 변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마음이 약해진 것일 수도 있지만, 생명을 자신의 곁에 둔다는 것은 피가 돌고 눈물이 있는 존재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다 또 신경쓰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 부분부터 주인공의 변화에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다. 살인청부업자에게 감정이 생긴다? 이는 살인청부업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영화 '똥파리'가 떠올랐다. 청부업을 하는 주인공이 지켜야 할 것들이 생기면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이 소설 역시 그렇다. 지켜야 할 것이 생기면 자신의 죽음에 이르게 된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이런 변화를 보인다.


그렇게 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소설이 죽음으로 끝나면 너무 단조롭다. 하여 또다른 살인청부업자가 등장한다. 이름을 투우라고 한다. 투우, 우리가 먼저 떠올리면 싸우는 소 아닌가. 상대에게 달려드는 그런 존재. 이 투우가 주인공인 조각의 삶에 관여하기 시작한다.


조각이 마음에 두고 있는 존재들을 제거하려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조각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고, 결국에는 조각을 파멸에 이르게 하려는 것. 투우의 아버지가 조각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투우 역시 살인청부업에 뛰어들었으니, 그에게서도 어떤 도덕을 찾을 수는 없다.


이제 투우가 조각에게 어떻게 접근하는지, 조각은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소설의 중심 내용이 된다. 끝까지 가는 과정에서 조각이 마음을 주고 있었던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고, 조각이 계속 살아남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제목이 '파과'인데 파과란 말이 여자와 남자 나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떨어진 과일, 또는 흠집이 난 과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흠집이 나기 전에 과일은 좋을 때를 지닌다. 좋은 때, 누구에게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좋은 때는 그것이 지나갔을 때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하게끔 한다.


하여 살인자의 삶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보면 '파과'에 해당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도 찬란한 삶의 한 순간이 있었음을 생각해야 하고.


소설을 읽으면서 살인을 실행하는 사람보다 그것을 사주하는 사람들에게 더 분노를 느끼게 된다. 자신의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지만 다른 사람을 이용해 피를 묻히는 그런 존재들. 


돈이나 권력을 이용해 남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인간들. 그런 사람들에게 저항할 수 없는 살인청부업자들. 이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살벌한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물론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살인으로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그런 권력들이, 돈이 얼마나 많은 파멸(죽음)을 이끌어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삶은 이지러진 삶이라고 할 수 있고, 흠집이 있는 과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이 이지러지는 것을 방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이지러진 삶에도 기댈 존재들이 등장하고, 기댈 존재들로 인해 변해가는 모습들을 통해서 사람이 변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 그것이 이지러진 삶이 아닌 한창의 삶, 찬란한 삶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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