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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평점 :
읽다가 깨달았다. 아, 이 소설들을 한 편으로 볼 수도 있겠구나. 캐나다 판 '여자의 일생'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하고.
각 소설들이 독립적이지만 읽다보면 연결이 됨을 알 수 있다. 그래, 주인공이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어린 여자아이부터 죽음을 앞둔 여자까지, 여자들이 살면서 겪게 되는 일들이 잘 표현되고 있다.
제목이 된 소설 '도덕적 혼란'부터 보면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여인의 모습이 나온다. 그녀는 도덕적이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한다. 남의 어려움을 쉽게 넘기지도 못한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이혼하지 않은 남자와 함께 산다. 여기에 그 남자의 공식적인 아내에게서 이런저런 간섭을 받는다. 마치 우리나라 옛날 '첩'처럼.
소설을 읽다보면 이렇게 살아갈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착하다는 말을 넘어서서 이건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삶이 아닌가 하기도 한다. 세상에 같이 사는 사람의 아들들이 온다고 주말 내내 나가 있어야 하기도 하고, 그 아이들에게 이것해라, 저것해라 하는 부인의 간섭을 받는 삶이라니...
하지만 여자는 자기 할 도리를 다한다고 한다. 남자는 그러한 일에 일절 간섭을 하지 않는다. 간섭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여자에게 미룬다고 보면 된다. 자신이 나서서 정리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들이 지니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여자 (작중 이름은 '넬'이다. 그리고 이 작품집에서는 '넬'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는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삶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물론 부모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인 양 하고 있겠지만) 여기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하면서 살아간다.
결코 능동적이지 않은데, 그렇다고 완전히 수동적이라고 볼 수도 없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넬.
그러니 도덕적 혼란이다. 무엇이 도덕적으로 올바른지 모른다가 아니라, 여자들에게 강요되는 도덕적인 굴레들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통이란 말이 폐지된 사회에서도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예전 도덕이 강요된다. 남자에게는 그럴 수 있지라고 넘어가는 일들도 여자에게는 비난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넬'의 모습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되는데, 다른 작품들에서도 남자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래브라도의 대실패'에서 아버지가 등장할 뿐.
이 소설집의 대부분은 여성 화자가 중심이다. 그리고 여성들의 삶이 중심을 이룬다. 직장을 가졌어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상태. 여기에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대부분 여성이 처리해야 하는 상황.
이혼 문제마저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남자와 함께 살면서 그 사람의 감정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생활. 그런 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
어린 시절에는 동생을 보살펴야 하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돌보고, 아이를 낳으면 다시 아이를 양육해야 하고, 이제 나이 든 부모가 있으면 그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여자의 삶.
소설집 첫 작품이 '나쁜 소식'인데, 그럼에도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이 주인공이다. 첫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다.'(26쪽)
여기에 마지막 작품인 '실험실의 소년들'에는 엄마가 남겨둔 종이에 "완벽하게 아름다운 날!!!'(382쪽)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그들의 삶에 고난이 많았을지라도 그들 역시 아름다운 날들을 지나왔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날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삶에서 몇 안 되는 아름다운 날이 아니라, 아름다운 날들이 더 많은 그런 삶들을 여성들이 누려야 한다. 이런 구절이 나오는 까닭이 거기에 있지 않을까.
여기에 이제 여성들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인 존재임을 말하면서 이 소설집은 끝난다. '나쁜 소식'으로 시작하지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주체는 여성이다. 그 점을 마지막에 실린 '실험실의 소년들'에서 '소년들의 운명은 이제 내게 달려 있다'(384쪽)고 여성 서술자가 말하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주체.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그리고 이제 여성은 남성에 매인 존재가 아니라 남성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주체로서 등장하게 된다.
결국 캐나다 판 '여자의 일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집에서는 여성이 삶의 주체로 우뚝 섬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한편 따로 떼어서 읽어도 무방하지만 전체를 다 함께 읽는 것이 훨씬 작품을 이해하는데 좋겠단 생각이 드는 작품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