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날들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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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을 쓴 정여울의 글에 정지아 작가가 했다는 말이 실려 있다. 아마도 이 소설집을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일 것이다. 물론 예외인 작품은 있지만.


"1%의 삶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99%의 삶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게 문학이 아닐까요?"(338쪽)


'1%의 삶'이란 우리 삶의 일부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1%의 삶이란 상위 1%에 속하는 사람들의 삶이라고 봐야 한다. 굳이 상위 1%에 속하는 삶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삶, 소위 행복하다고, 성공했다고 여기는 삶을 1%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삶에서도 빛나는 한때를 1%의 삶이라고 봐도 좋다.  


이 소설집에서는 '나의 아름다운 날들'이라는 소설이 바로 1%의 삶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의 모습.


'막 샤워 끝낸 남편의 몸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 때문에 오색영롱한 무지개가 두 사람 위로 어룽거린다. 눈부시게 찬란한 아침이다. 눈부시게 찬란한 인생이다.'('나의 아름다운 날들' 끝부분. 302쪽)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무엇 하나 부러운 것이 없는 삶을 살아온 김여사. 김여사 부부의 금혼식 날 아침에 김여사의 서술로 벌어지는 일들. 이들에게 가난이란 없다. 어려움이란 없다. 그냥 자연스레 해결이 된다. 그야말로 1%이 삶이다. 그러나 그런 1%의 삶에 가려진 99%의 삶도 있다.


김여사가 가정부의 삶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듯이, 그런 1%들은 자신들의 무지개빛 같은 찬란한 인생 속에 갇혀 있을 뿐이다. 


작가는 그런 삶이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질문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나의 아름다운 날들'은 1% 삶에 대한 풍자다. 풍자로 읽어내야만 한다. 그들의 그런 삶에 가려진 99%의 삶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 1%의 삶들이 자신들의 삶으로 99%이 삶을 가리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문학은 우리가 애써 감추려 했던, 또는 보지 않으려 했던 99%의 삶을 보여줘야 한다. 


이 소설집에서 그런 우리가 외면했던 또는 보지 못했던 99%의 삶이 잘 나와 있다. 때로는 너무도 힘든 상황이라 읽기에 힘든 그런 작품들도 있는데, 그럼에도 힘든 상황에서도 한 줄기 빛을 놓치지 않는 작품들도 있다. '절정'이란 작품이 그렇다.


한 없이 바닥으로 추락한 노숙인들의 삶. 그러나 노숙은 하지만 노숙자가 되지 않겠다고 노력하던 김이 결국은 간암으로 입원해 있다는 편지를 받은 그. 더이상 떨어질 나락도 없는데, 그들이 살려고 아등바등 대는데, 세상은 이들이 깃들 작은 공간이나마 주지 않는다.  


고시원 다닥다닥 붙은 방. 옆방의 소리만이 아니라 복도 걷는 소리마저도 다 들리는 그런 삶터. 그래도 그들은 노숙은 하지 않는다. 다만 하루하루 앞날을 내다보기 힘든 삶들이다. 지쳐 곯아떨어져야 하는 몸상태임에도 편히 쉴 수 없다. 모든 소리가 들리는 그런 곳에서 어찌 쉽게 잠이 들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사랑은 이루어진다. 숨죽여 사랑을 나누는 이. 그것이 묘한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제목은 절정인데, 그들의 삶은 바닥이다. 사랑조차도 숨죽여야 하는 그런 바닥. 이것이 바로 99%의 삶이다. 


'죽기도 어렵고 살기도 어렵다. 꿈을 꿀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꿈을 버리는 순간 노숙자로 전락할 게 두려울 뿐이다. 그의 손이 위로하듯 가만가만 성기를 조물락거린다. 김이 웃고 있다. 잘 지내게.' ('절정' 꿑뿌분. 328쪽)


이 소설집에 나란히 붙어 있는 '나의 아름다운 날들'과 '절정'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1%의 삶과 99%의 삶이 나란히 붙어 있다. 인생은 이렇게 복잡다난하다. 무어라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런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난 소설이 '브라보, 럭키 라이프''핏줄', '즐거운 나의 집'이다.


무어라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삶들. 그런 삶의 모습들. 예전 유용주의 산문집 제목이 떠오른다.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그렇다. 이들은 살아간다.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온 아들을 20년 넘게 보살펴온 부모. 외국인 며느리가 마음에 들면서도 손자만은 자신들을 닮기를 바라는 할아버지, 한적한 전원생활을 꿈꾸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한 전직 기자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복잡한 세상, 복잡한 삶이다. 한 사람의 삶 속에도 1%의 삶이 있고 99%의 삶이 있다. 우리가 1%의 삶만 보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 삶에 있는 99%의 삶을 껴안고 가야 한다. 


99%의 삶을 1%의 삶으로 바꾸어 가는 모습이 담긴 소설이 '천국의 열쇠' 아닐까 한다. 남들이 말하는 천국과는 다른, 그러나 분명 천국이 분명한 그런 장소.


이 장소를 자신만이 아니라 힘들어하는 이웃에게도 전해주는 모습. 힘든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모습. 그 점이 잘 나타난 소설 '천국의 열쇠'


천국의 열쇠는 1%의 삶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 열쇠는 99%의 삶에서 나옴을 이 소설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밖의 소설들도 좋다.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 한편 한편이 좋아서 그냥 읽어보라는 말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


따스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소설 '봄날 오후, 과부 셋'도 좋고, 이와 대칭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이번에는 할아버지 셋이 등장하는 '혜화동 로터리'도 무겁지만 무겁지 않게, 현대사의 슬픔이 녹아 있지만 삶 속에서 그를 녹여내 살아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읽으면서 99%의 삶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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