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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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날 아침 영리하지만 전혀 심오하지는 않은 짐 샘스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거대 생물체로 변신해 있었다.' (13쪽)


카프카 [변신]에서 게오르그 잠자가 깨어났더니 벌레로 변해 있었다는 문장을 상기시킨다. 그렇게 시작은 변신으로 시작한다. 무엇이 변신했다는 말인가? 첫문장을 보면 잘 알 수가 없다. 카프카처럼 사람이 다른 존재로 변신한 것일까? 아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곧 사람이 다른 존재로 변신한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가 사람으로 변신한 것을 알 수가 있게 된다.


짐 샘스는 사람 이름처럼 보이지만 사실 바퀴벌레 이름이다. 그리고 그가 변신한 거대 생물체는 바로 인간이다. 그것도 영국의 수상.


마찬가지로 다른 각료들도 바퀴벌레들이 변신한 존재로 나타난다. 몇 각료를 빼고는. 하지만 본래 인간이었던 장관은 그들의 세상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바퀴벌레로 장악된 정부에서 역방향주의가 통과가 된다.


그렇다면 역방향주의란 무엇일까?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는 반대로 가는 것이다. 어떤 것? 설명을 보면 이 소설은 영국의 브렉시트를 풍자하고 있다고 한다.


즉, 영국의 브렉시트는 세계가 나아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이고, 그것이 과연 영국민의 행복을 보장할까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바퀴벌레의 변신으로 나오고, 또 그들의 정책이 역방향주의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작가는 브렉시트에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대통령으로 나오는 인물은 누가 읽어도 트럼프를 연상시키고 있으니, 영국과 미국에서 벌어진 경제 정책이 국민의 행복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정책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소설의 끝부분을 보라. 과연 역방향주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생각하게 하는데...


'우리는 우회적인 수단을 통해, 그리고 많은 실험과 실패 끝에, 인간의 파멸에 필요한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지구온난화는 확실한 전제조건이고, 평화로운 시기에는 고착화된 계급, 부의 집중, 뿌리 깊은 미신, 루머, 분열, 과학과 지성과 낯선 이들과 사회적 협력에 대한 불신을 꼽을 수 있지요.' (123쪽)


이 말은 역방향주의는 개방이 아니라 폐쇄로, 협력이 아니라 갈등으로, 다수의 이익이 아니라 소수의 이익을 위한 정책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 불행하게 되는 방향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다음 구절을 보면 역방향주의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알게 된다.


'역방향주의라는 광기가 일반 대중을 더 가난하게 만들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번성할 것입니다.' (123쪽)


이때 바퀴벌레를 우리가 아는 바퀴벌레로 생각하지 말자. 보통 사람들에게 기생해 사는 존재로 보면, 대다수의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바퀴벌레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바퀴벌레들의 농간을 간파하지 못하면 우리들의 삶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음을 소설은 잘 보여준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잠자는 결국 죽음에 이른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들은 성공해서 의기양양하게 돌아간다.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그런데 이 소설에 나오는 미국 대통령이 왜 트럼프만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까?  이 소설에 나오는 바퀴벌레와 같이 변신한 종족들이 우리들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지는 않나 하는, 이 소설이 꼭 영국의 브렉시트를 풍자한 소설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니, 소설을 읽으면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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