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사 사회
송병기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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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들 삶은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이 말에는 공동체는 없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데, 이 말에는 개인은 있지만 사회는 없다. 이런 사회가 과연 행복한 사회일까? 아니다. 각자도생의 사회는 어쩌면 홉스가 이야기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일 것이다.


내 삶을 공동체가 보살펴주지 않는데, 어떻게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공동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나 아닌 남들은 모두 내 삶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일 뿐이다. 그러니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사회가 될 수밖에.


하여 우리는 복지제도를 통해서 각자도생의 사회를 극복하려고 했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으므로, 내가 모든 것을 만들고 쓰고 할 수는 없으므로, 누군가에게 기대어 사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므로,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나아가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런 노력으로 인해 복지제도가 만들어졌고, 한 사람의 삶을 그 사람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최소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그런 생각. 그리고 그런 제도.


각자도생의 문제는 이렇게 풀었다. 그런데, 이 책 제목은 각자도생이 아니다. 각자도사다. 세상에 죽음만큼 개인적인 어디 있을까 싶은데,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철저하게 개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각자도사의 사회라니...


죽음에 이르러서 고립되고 소외된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왜냐하면 죽음만큼 개인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더라도 죽을 때는 홀로 죽는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죽음이 홀로 겪어야 하는 일일까? 이 책은 죽음 직전에 이른 사람을 돌보는 사람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다. 누가 돌봄을 책임졌는가? 아니 누구에게 돌봄을 전가했는가? 그런 돌봄을 하는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돌봄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다. 돌봄을 받는 사람은 또 어떤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해지는 온갖 치료들이 과연 사람답게 죽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인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또 노인들을 사회 부담으로 여기고 있는 현실이 바람직한가?


수치로, 젊은 세대는 줄어들고, 늙은 세대는 늘어나, 젊은 세대의 부양 부담이 가중된다는 말을 많이 하면서도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냥 부양해야 할 덤과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1부는 이런 노인들의 죽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의학적 치료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환자와 보호자, 의사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또 국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떤 정책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섬뜩하기도 하다.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도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1부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1부 각자 알아서 살고, 각자 알아서 죽는 사회

집, 노인 돌봄, 커뮤니티 케어, 호스피스, 콧줄, 말기 의료결정, 안락사


'집'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집에서 임종을 맞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한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는 구조라고 한다. 누가 돌보겠는가? 노인 돌봄과 커뮤니티 케어가 대두가 되는데, 이 책에서 노인 돌봄이 생명 유지와 연결이 되어 '콧줄'로 연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과연 그것이 존엄한 죽음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묻고 있다. 그러니 '말기 의료결정과 안락사'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사회가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쪽으로,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과 비슷한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커뮤니타 케어'를 들고 있는데, 이것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한다.


그냥 노인이 집에 있으면서 방문하는 의료진이나 돌봄 노동자들에게 돌봄을 받는 것으로는 '커뮤니티 케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호스피스'와 같이 치료가 아닌 돌봄이 이루어지는 곳이 더 늘어나야만 한다고 하는데, 이도 쉽지 않는 일이다. 호스피스와 관련해서는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무작정 연명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고 살아가게 하는 호스피스.


'호스피스를 죽으러 가는 장소가 아니라 모든 환자를 위한 환대와 돌봄의 시공간으로 더 과감하게 상상해야 한다. 시민들이 호스피스를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라면 죽음의 풍경도 달라질 것이다.' (74쪽)


이런 1부에 이어 


2부 보편적이고 존엄한 죽음을 상상하다

제사, 무연고자, 현충원, 코로나19, 웰다잉, 냉동 인간, 영화관


을 통해 존엄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제사 풍경이 바뀌어야 하고, 다양한 죽음들을 이야기하면서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가 되는데...


죽음에도 차별이 있었음을 명심하고, 그런 차별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각자도사 사회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우리가 함께 하는, 그런 실질적인 사회적 동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자고 이야기 하는 듯하다.


다만 이 책의 1부가 우리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면 2부는 좀 약한 감이 있다. 1부에서 의사들이 지닌 문제에 대해서도 잘 이야기하고 있는데, 요즘 의사 정원 확충과 관련해서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주는 글들도 꽤 있다.


죽음과 의료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므로... 하여간 각자도생의 사회도 각자도사의 사회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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